하루키가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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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출간됐다.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의 친필 사인본을 구입하려는 독자들이 긴 줄을 서 있다. [뉴시스]

‘하루키 신드롬’이 한국에서도 다시 한 번 일어날까.

 1일 정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 한가운데 50m 가량의 줄이 늘어섰다. 이날 선보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4)의 신작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친필 사인본을 손에 넣으려는 독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밀려들었다. 하루키가 친필 사인을 한 것은 처음이다.

하루키의 신간은 이날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예스24 등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주인공은 과거로 여행 떠나는 30대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파워’는 숫자가 증명한다. 올 4월 일본에서 나온 신작은 초판 50만 부를 찍었고 출간 1주 만에 100만 부를 기록했다. 국내 선인세가 1억5000만엔(당시 약 16억6000만 원)이 넘을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한글판은 초판만 20만 부를 찍었고 추가로 5만 부를 제작하고 있다. 하루키의 전작 『1Q84』(문학동네)는 국내에서만 200만 부 가량 팔렸다.

 ◆하루키의 ‘문학적 귀환’=이번 작품은 하루키의 문학적 귀환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로 돌아온 듯한 인상이 강해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다자키 쓰쿠루. 30대 중반의 주인공이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이 소설의 주요한 골격이다. 그에게는 고교시절 가장 친했던 4명의 친구가 있었다. 고향인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에게 친구들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다. 갑작스런 단절과 소외를 경험한 그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과거의 사연을 찾아 떠난 치유의 여정이, 리스트의 곡 ‘순례의 해’와 함께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30~40대 팬들, 감각적 문체에 열광

 윤상인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는 “한마디로 ‘하루키가 돌아왔다’다. 199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은 하루키와 청년기의 불안한 영혼을 공유한 듯한 독특한 기억과 공통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신작은 그 시절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최재철 한국외대 일본학부 교수는 “단절과 소외를 경험한 주인공이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인 역(驛)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작품의 제목은 주인공이 순례를 통해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왜 하루키인가=하루키는 세련된 문체와 뛰어난 이야기 구성으로 전세계 문학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작가로 통한다. 최재철 교수는 “하루키는 현대 젊은이의 소외와 고독 등 보편적인 정서를 읽기 수월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독자들이 일본 문학 특유의 디테일이나 분위기에서 주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것도 하루키가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말했다.

 다양한 독자층도 ‘하루키 신드롬’의 주요한 이유다. 『1Q84』 등으로 하루키를 접한 20대 독자를 비롯해, 90년대 하루키의 작품에 열광했던 30~40대 ‘하루키 키즈’가 ‘하루키 신드롬’의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다. <그래픽 참조>

 김춘미 고려대 일문과 명예교수는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 살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이 386 세대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세대가 고정 독자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들이 충실한 팬으로 남아 있는 건 그동안 써온 작품이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역사보다 개인의 삶에 방점

 하루키는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다. 윤상인 교수는 “하루키는 상당히 광범위한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 영역에서 사람을 흡인하는 능력이 있다. 90년대 이후의 정신과 사회 현상, 패션 등에 하루키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하루키의 어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교수는 “오늘날은 90년대보다 더 개인화됐고 자본에 종속됐다. 가족이나 전통 사회의 윤리가 아닌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하루키의 솔직한 어법이 인생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하현옥·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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