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 유해 360구 송환 … 중국 껴안으며 대북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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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는 한국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가 있다. 예전에는 각목에 하얀 페인트를 칠한 비목(아래)이 묘지에 세워져 있었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부터 봉분에 직사각형 형태의 묘지석(위)을 설치하는 등 묘지를 단장했다. [뉴시스], [중앙포토]

6·25전쟁 때 전사해 경기도 파주에 안장된 중국군 유해 360여 구가 모국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중국 방문 중 류옌둥(劉延東) 국무원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올해가 정전 60주년이다. 우리 군이 관리하고 있는 360구의 중국군 유해를 송환해 드리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중국의 유족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류 부총리는 “너무 감사드린다. 바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께 보고드리겠다”며 환영했다. 정부는 중국군 유해를 파주시 북한·중국군 묘지(과거 적군묘지)에 안장해 왔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한·중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국군 유해 문제를 관할하는 국방부는 물론 외교부도 핵심 관계자들만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발굴 중국군 유해 전원 송환카드를 꺼낸 박 대통령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27일 6·25전쟁 종전 60주년을 앞둔 시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유해 송환은 전쟁 당시 ‘중공군’에 대한 화해와 관용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또 적대 관계에서 수교 21주년(8월 24일)을 맞는 새로운 한·중 관계에 대한 상징적 조치일 수 있다. 해외에 묻힌 중국군은 11만5217구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중 99%에 이르는 11만4000여 구가 한반도에 산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1997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북한군 유해 617구, 중국군 유해 385구를 발굴했었다. 이후에도 추가로 중국군 유해 수십 구가 나왔다. 이들 가운데 81년부터 97년까지 43구의 유해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송환했다. 그러나 박신한 단장은 “발굴 때마다 유엔사 정전위를 통해 중국과 북한에 통보해 왔지만 중국이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중국 측이 소극적이었을 것이란 게 국방부 측 설명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중국 내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2011년 3월 최대 정치행사인 중국의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선 한국에서 발굴된 자국군의 유해를 송환하자는 특별안건이 제기됐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나 판문점 대표부를 통한 협의를 계속 거부할 경우 중국군 유해 송환 협의는 한·중 간 외교채널을 통해 직접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군 유해 송환도 군정위를 통해야 하지만 유엔군사령부가 동의한다면 한·중 양자협의를 거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북한 땅에 묻혀 있는 한국군 유해의 송환을 추진하려는 포석이란 풀이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2002년 5월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국군포로 송환과 유해 발굴에 대한 합의를 얻어 낼 정도로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회담 등을 통해 북한 내 한국군 유해 송환에 합의하고도 직접 인도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향후 국군 유해 송환을 위해 중국 측의 협조를 얻고 협상 과정에서 북측을 압박하려는 정지작업이란 말도 나온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96년부터 220여 구의 미군 추정 유해를 발굴했었다. 미 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는 이 가운데 12구를 한국군 유해로 파악해 우리 측에 인도하기도 했다.

 ◆“광복군 유적지 표지석 설치 허가해 달라”=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시안(西安)에서 산시(陝西)성의 자오정융(趙正永) 당서기, 러우친젠(婁勤儉) 성장과 면담하면서 40년대 시안의 창안(長安)구 두취(杜曲)진에 주둔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활동을 기릴 수 있도록 표지석 설치를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광복군 유적지의 표지석 설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용수·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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