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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땅 가까이 보게 무덤 북향으로 … 군 "세계서 하나뿐인 적군 안장 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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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 파주에서 연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변의 나지막한 언덕에 돌아갈 곳 없이 떠도는 혼령들이 잠들어 있다. 공식 명칭은 ‘북한군·중국군 묘지’이지만 통칭 ‘적군(敵軍)묘지’라 불리는 곳이다. 남방한계선에서 5㎞ 거리의 민간인통제구역에서 가까운 이곳에 6·25전쟁 중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1100여 구가 안장돼 있다. 이 가운데 360여 구가 한때 ‘중공군’이라 불렸던 중국군 유해다.

 30일 오후 이곳을 찾았다. 주변에 이정표나 간판이 전혀 없어 차량용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지 않으면 찾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묘지에는 일반 방문객의 모습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문·방송사 취재진의 모습만 눈에 띄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기간 중 중국군 유해 360여 구의 본국 송환을 제안하면서 이곳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때문이다.

 묘역은 비교적 깔끔했다. 국방부가 지난해 8월부터 4개월간 5억원을 들여 묘지를 재단장한 덕분이다. 푸른 잔디밭에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 있게 묘역이 조성돼 있다. 봉분마다 조그만 직사각형 형태의 대리석으로 된 묘지석이 놓여 있다. 한 중국군 묘지석에는 ‘중국군 무명인, 300, 2006년 9월 22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이라 쓰여 있다. 6·25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 전투에서 전사한 후 2006년 우리 정부에 의해 300번째로 수습된 유해가 안치된 묘소라는 의미다.

  이날 중국군 묘역 주변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던 한 농민(65)은 “평소 일반인들의 발길은 거의 없지만 가끔씩 중국인 관광객들이 관광버스편으로 단체방문해 참배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봉분 앞 각목에 흰 색칠을 한 비목이 세워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국군 묘지가 있는 2묘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10여 대 규모의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이 또한 예전엔 보지 못하던 모습이다.

 적군묘지의 총 면적은 6099㎡로 축구장 두 개를 합친 정도다. 1묘역은 북한군 묘역, 2묘역은 북한군·중국군 묘역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대부분의 묘는 해가 잘 드는 남쪽을 향하는 것과 달리 이곳의 묘는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다. 군 당국자는 “죽어서나마 고향 땅을 가까이서 바라보도록 배려하기 위해 민통선 인근 북향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는 모두 개별 매장이었으나 최근에는 합장이 많아졌다. 유해 발굴 사업과 함께 이곳에 묻히는 전사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 묘역에는 6·25 전쟁 이후 남파된 무장공비와 KAL기 폭파범 등의 유해도 일부 포함돼 있다. 국방부의 설명에 따르면 총부리를 겨누며 싸운 적군의 유해를 이처럼 안장해 둔 묘지는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묘지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조성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파주=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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