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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기술자「계획」적중| 우주국선 한때 냉소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달착륙선(또는 자선)의 별명은 빈대 또는 거미.
이 달착륙선의 시초는 연필로 아무렇게나 그린「스케치」에서 시작하여 나무로 모형이 만들어지고 오늘날과 같이 종이 한 장보다도 엷은「알루미늄」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기에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으며 더우기 착륙용 사다리만 보더라도 지구중력보다 6분의l밖에 안되는 달에서나 사용되며 지구에 가져와도 아무 소용도 없고 오직 우주에서만 사용되도록 완성되기까지 매우 길고 신기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했다.

<대기권외서만 유용>
이 달착륙선은 지구대기권 외에서만 비행할 수 있도록 특수제작 되었으며 이것이 우주공간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영원히 정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착륙선이야말로 사실상 실용우주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16톤의 무게를 가진 달착륙선은 18개의「로키트」와 50km에 달하는 전선, 8개의 상이한「라디오」송신기, 15개의「안테나」와 4개의 거미다리를 가지고있다.
달착륙선이 생산케 된 이면에는 그 기계자신이라기보다 어떤 대담한 결정권이 달착륙선을 낳게 했다. 바로8년전만 해도 이러한 달착륙선을 고안한 기술자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당하기까지 했다. 한 사람의 기술자에 의한 그의 확고한 자세와 용단은 미국으로 하여금 수십억불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절감케 했으며 수년간 달착륙 계획의 지연을 방지했다.
어떤 우주인도 지구궤도를 선회하지 못하였던 지난1961년「워싱턴」에서 개최된 전국 우주개발위원회에서 미 우주항공국의 기술자인「존·C·후볼트」(당시41세)는「달궤도선회」라는 새로운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계획은 당시「머큐리」및「로키트」전문가인「맥심·화이트」및 「폰·브라운」박사등으로부터 실현성이 희박하다고 툇자를 맞았다. 이때는「브라운」박사나 다른「로키트」전문가들은「지구궤도선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 때었다.
그러나 그에게 서광을 비친 것은 196l년 고「케네디」대통령이 60년대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드디어 1961년11월「후볼트」는 미우주항공국 부국장이었던「로버트·시만」에게 서신을 보내고 미항공우주국이「휴스턴」우주본부에 간섭 없이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건의했다.
드디어「시만」씨는「후볼트」의 서신을 「워싱턴」의 우주항공국에 발송했는데 그 결과 찬성을 얻게되어 그의 숙원이던「달궤도 선회계획」안은 채택되었다.

<10년의 집념이 승리>
그를 반대해온 자들도 모두 이 계획에 동조하게되었으며「폰·브라운」박사도 1962년 드디어 그의 태도를 바꾸어서「후볼트」계획에 참여하게되었다. 1963년에 「달궤도선회계획」은 드디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때「후볼트」는 미항공우주국을 떠나 「프린스턴」항공회사로 가게 되었다.
「후볼트」는 과거의 그의 모든 주장이 앞으로 인간이 달착륙하는데 있어서 가장 빠르고 가까운 지름길이라고 말하면서 지난「아폴로」9호 발사때만 하더라도 그의 평소생각과 예견이 얼마나 적중한 것이었던가 술회하고 있다. <라이프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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