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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3백70일-베트콩서 풀려난 서독 간호원 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68년3월3일 저녁 월남의 「콘툼」시 북쪽6킬로 떨어져 있는 「가톨릭」병원을 기습한 「베트콩」은 서독 간호원 「레나테·쿠넨」양을 납치해 갔다. 「베트콩」은 그들이 오래전부터 납치하려고 별러온 미국인 병원장 「패트·스미드」여사로 잘못 알고 「래나테」를 납치해갔다. 「레나테」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베트콩」손에 죽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베트콩」은 그녀의 몸값으로 서독 정부에 3백만「달러」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납치 후 3백70일이 지난 금년 3월7일 「베트콩」은 돌연히 「레나테」를 석방했다. 석방 조건이나 동기는 아무도 모르는채 「레나테」는 고향인 「슈벨름」서 휴양 중이다. 다음 글은 「슈테론」지가 1만2천5백「달러」로 독점 계약한 「레나테」의 수기 중 첫회인 납치되던 날 밤의 이야기다.
그날 밤 나는 숙직 당번이었다. 자가용 발전기소리를 들으며 잠이든 것이 자정. 그러나 곧 총성에 잠이 쨌다. 총성에 이어 비명소리를 들었다.
바지와 웃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병동으로 뛰어 들어갔다. 복도에 핏자국이 있었다.
핏자국을 따라 가니 어린 환자가 쓰러져 있고 옆에 친척인 「안」이라는 20세의 청년이 있었다.
어린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려 할때 「베트콩」이 내 등에 총부리를 들이 됐다. 나는 「안」과 함께 밖으로 끌려나와 등뒤로 팔을 묶였다. 직원 「리프」(월남인)도 이미 묶여 있었다. 진료실에서 약품과 의료기를 약탈한 「베트콩」들이 총부리를 들이대며 『뛰어!』라고 명령하면서 우리를 끌고 나갔다.
우리는 산을 향해 북으로 뛰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강이 나타나면 뛰어 들어 도망치려 했으나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납치된 방향을 알리고자 「샌들」한 짝을 벗어 던졌다.
군데군데 「베트콩」의 초소를 지났는데 그때 그들은 나를 「미국인 의사」라고 불렀다. 나는 그들이 나를 「스미드」여사로 오인한 것을 알고 『나는 독일 간호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계속 끌려갔다. 그동안 영리한 「리프」는 자기가 병원직원이 아니라 입원환자인 것처럼 가장, 신음을 하다가 석방되었다.
길은 점점 가파르고 개울을 건너다가 한짝 남은 「샌들」마저 잃어 발이 부르터서 피가 났다. 미군기가 머리 위를 날면 우리는 바짝 땅에 엎드렸는데 그때마다 「베트콩」은 그들의 검은 옷을 내게 뒤집어 씌워 공격의 대상이 될까 두려웠다.
산족 「몬타냐르」마을을 지날 때 한 처녀가 내게 고무 「샌들」을 주어서 한결 고통은 덜했다.
도중 식사를 하는데 「베트콩」이 깨끗한 손수건에 밥을 얹어 내게 권했으나 도무지 목구명을 넘어가지 않았다. 17시간을 행군한 뒤 잠시 휴식을 할 때 5분을 잤다. 4일도 계속 행군.
나는 공포에 떤 결과여자들이 한달에 한번씩 겪는 일을 느닷없이 겪게 되었다. 탈지면은 고사하고 손수건하나 가지고있지 않았기 때문에 「베트콩」의 귀순을 권고하는 미군의 전단을 주워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슈테론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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