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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약 청사진 '부자 완주'에 안 먹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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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6일 실시된 완주 주민투표로 전주?완주 통합 무산이 확정되자 통합반대 운동을 펼친 주민들이 봉동읍 내 대책위 사무실에서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 통합이 다시 무산됐다. 27일 오전 1시쯤 가려진 완주군 주민투표의 개표 결과, 55%(2만343명)의 반대표가 나왔다. 찬성 측(1만6412명)보다 3941표가 많았다. 이보다 하루 전인 26일 완주군 13개 읍·면에서 실시된 주민투표에는 만 19세 이상의 유권자 6만9381명 중 53.2%인 3만6940명이 참여했다.

 193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분리된 전주·완주를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기 위한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1997년, 2009년에도 통합 움직임이 있었지만 완주 군민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번 세 번째 도전은 출발부터 달랐다. 두 지역을 이끄는 송하진 전주시장·임정엽 완주군수는 물론 김완주 전북지사 등이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면서 통합에 대한 전망과 기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 같은 예측이 빗나간 것은 우선 통합 논리가 ‘부자 군민 프레임’을 뛰어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통합론자들은 두 지역이 하나로 합치면 기업유치가 원활해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경제력이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완주 군민들은 이미 잘살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질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삼례읍에 사는 성모(63·농민)씨는 “삶의 질 측면에서 전주시민 못지않게 잘 사는데, 골머리 아픈 통합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반대파는 이 같은 심리를 활용해 ‘완주의 1인당 재정예산(전주 180만원, 완주 630만원)·교육예산(전주 41만5000원, 완주 86만3000원) 등이 전주의 2~4배나 된다’고 강조했다. 투표 며칠 전부터 급속히 전파된 ‘통합되면 교육청이 없어져 아이들에 대한 교육복지 혜택이 사라진다’는 선전공세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통합 논의가 정치공학적으로 변질돼 주민들의 반감을 부채질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전주시장이 도지사 선거에 도전하고, 완주 군수가 전주시장에 출마한다’는 시나리오가 확산되면서 통합론의 순수성·진정성 등이 희석되었다는 것이다. 통합청사 후보지(용진면)에서 제외된 타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반대표로 이어졌다. 개표 결과 용진면(56.44%)·구이면(53.81%)에서만 찬성표가 많았을 뿐, 통합에 우호적이라고 알려졌던 삼례읍(55.2%)·봉동읍(50.52%)·소양면(50.11%) 등에서 쏟아진 반대표가 이를 증명한다.

 당분간 지역에는 통합무산의 후폭풍이 휘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단체장들의 정치적 행보는 물론 선정 부지까지 발표한 통합 청사·스포츠 타운, 농업발전기금 사용 문제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완주군의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20여 년간 세 차례 통합 논의를 거치면서 지역별로 찬반이 뚜렷이 갈리는 등 갈등의 골이 깊이 패여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송하진 전주시장은 “전주·완주 통합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라며 “앞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험난한 길도 주저함 없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모든 힘을 쏟아 붓겠다”고 말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주민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그 뜻을 받들어 더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며 “지난날의 앙금을 털어내고 군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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