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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상 만난 날 … 북 "대화록 공개, 최고존엄 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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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 대해 첫 공식 반응을 보였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7일 “수뇌상봉(남북정상) 담화록을 공개한 것은 우리의 최고존엄(김정일을 지칭)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 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며 “반민족적 대결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 ‘긴급성명’에서다.

 조평통 성명은 회의록이 공개(지난 24일)된 지 사흘 만이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는 날 나왔다. 조평통은 “담화록은 어느 나라에서나 최대의 극비로 되어 있다”며 “세계외교사에 있어 본 적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보안업무규정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한 문건 공개를 ‘망동’ 운운하며 비난하고 나선 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조평통은 성명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미국조차도 불법성을 인정한 유령선(線)”이라며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는 10·4 선언에 그 평화적 해결방도가 합리적으로 밝혀져 있고, 성실히 이행됐다면 오늘날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논란을 빚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과 10·4선언을 토대로 NLL 무력화 주장에 힘을 붙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조평통은 “종북을 내들고 문제시하려 든다면 역대 괴뢰 당국자치고 지금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던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도 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을 지목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로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평통은 지난해 6월에도 “박근혜는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장군님(김정일)의 접견을 받고 친북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면서 “필요하다면 남측의 전·현직 당국자와 국회의원들이 평양에 와서 한 모든 일과 행적, 발언들을 전부 공개할 수 있다”고 했었다.

 한·중 정상회담 개최일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부각시킨 걸 두고 의도적 택일이란 지적이 나온다. 회의록 공개의 부당성을 강조해 정상외교 무대에 나선 박 대통령에게 심적 압박을 주려 한다는 얘기다.

 조평통은 이날 우리 측을 향해 “수치스런 파멸이 올 것”이라면서 성명을 마쳤다. 북한이 이날 극렬한 비난을 퍼붓긴 했지만 박근혜정부와의 당국대화를 통한 출구전략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상 남북관계의 근간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화를 회피할 핑계로는 삼겠지만 결국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회담 복귀를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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