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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은 블랙컨슈머의 횡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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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조재홍
KDB생명 사장

최근 블랙컨슈머로 회사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대리점을 통해 보험에 든 고객으로부터 청약철회 요청이 들어왔다. KDB생명이 아닌 KDB금융그룹으로 소개해서 가입했으니 보험료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고객 본인임을 확인하고 그날로 보험료를 돌려줬다.

 그런데 끝난 게 아니었다. 고객이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보험 권유자(대리점 모집사용인)의 불완전 판매 사항을 회사에 알려주는 과정에서 전화 통화와 팩스 비용이 들었고 상당한 시간을 썼으니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감안해 1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내게 직접 해왔다.

 불완전 판매를 알려준 것은 고맙지만 지나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랬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로부터 3~5분 간격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문자메시지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10여 차례 계속되는 욕설에 견디지 못해 스팸 처리를 했더니 이번에는 다른 휴대전화로 계속했다. 그래도 반응을 하지 않자 소리샘에 욕설을 남기고, 새벽 3시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도무지 정상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행태였다. 더구나 그 고객은 자신이 대학 교수이고 학생들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시정잡배도 아니고, 사회적인 지위와 책임이 있는 대학교수가 이런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더 심한 상처를 안겨주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렇지 않지만, 일부 블랙컨슈머는 이렇게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데까지 와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회사 직원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있는 모든 상담원, 콜센터 직원, 백화점 근로자 등 ‘감정노동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결국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여럿 있다.

 이들은 어디서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소비자보호가 성숙한 사회의 ‘가치’라면, 소비자 스스로 보호받을 가치를 만드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절대 ‘갑’과 절대 ‘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교수로부터 받은 폭언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개했다. 최소한 학교에는 알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담당 간부가 그를 찾아가 전화요금 등으로 사용된 돈을 건네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청와대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계속 회사를 괴롭힐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란 게 그 간부의 설명이다. 얘기를 듣고서는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그대로 뒀다간 더 악질적인 블랙컨슈머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했다.

 그날 밤 그 교수로부터 연거푸 세 번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중용에 써 있기를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 소인지중용야 소인이무기탄야’(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군자의 중용은 군자답게 때에 맞고, 소인의 중용은 소인답게 기탄이 없다.) 기탄없이 사시게.” 100만원의 요구를 과하다고 한 나를 소인배라 놀리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기꺼이 소인배가 될 것이다.

조재홍 KDB생명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