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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운동과 등반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새로운 교훈되게>
한국산악회의 등반훈련대원 19명중 대장·부대장등 열명이 눈사태에 덮이어 일순간에 생명을 잃은 조난사고는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교훈이되지 않아서 아니될 것이다. 등산운동에 뜻을 가진이들에게 뿐아니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나가야할 경륜을 가지는 일반사회인에게도 측면적인 귀중한 교훈의 자료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해방직후 한국산악회가 조직된 이래 바로 몇해전까지 20여년 부회장·회장의 위치에 있으면서 특히 겨울의 적설기 등반훈련을 위하여 회 내의 가장 경험이 풍부한 등반의 노장 김정태군을 앞세우고 두차례의 한라산 적설기 등반훈련을 직접 지휘했던 것을 비롯해서 지리산과 설악산의 훈련에서는 이번의 대장 이희성중령을 지휘자로하고 각기 2주일간씩 「베이스·캠프」를 지키거나 또 산밑에서 지원해온 나로서는 이번 조난사고가 앞으로 젊은 산악동지들에게 꼭 새로운 큰 교훈이 되게하여야할 것을 절실히 느낀다.
사고의 직접·간접원인에 관해서는 산악회로서 훈련계획과 대원편성에서부터 전면적인 엄밀한 조사검토가 있을줄 안다. 지금 나로서는 조난한 그들이 경험과 지식의 무엇이 얼마나부족해서 그런 사고를 만나게 되었던가? 생각키 어려운 안타까운 심정이 앞설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볼때 등반활동은 어느정도의 기술이나 지식으로써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여기서 한번더 외치고 싶다.

<경건한 마음가짐>
첫째, 산에 오르는 사람으로서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대개 산이란 것을 어떻게보며 왜오르는가하는 것부터라고 하겠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따름인 것이다. 산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격을 받는다거나, 도전을 받는다거나, 또 정복되어야 할 아무런 적의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슨 뜻에서인가 때로는 영산이니, 영봉이니하며 산의 장엄하고 수려한 기품에 도취하여 사랑의 예찬을 아끼지아니하는가 하면, 공격과 정복의 대상으로 이르며 심하면 마(마)의 산이라고 저주하기도 한다. 이 무슨 사람들의 야속하고 간사스럽고 또 교만한 태도랴! 산은 그헤아릴 수 없는 무게와 더불어 그지없는 위엄과 동시에 자애에 넘치는 관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떤 비바람이나 눈보라 앞에도 언제나 떳떳하고 의젓하고 미더운 그 그욱한 위풍은 우리들 인간에게 길이길이 교훈의 길잡이가 되고 덕의 상징이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산에 오르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은 오직 경건한 태도로 겸손할 따름인 것이다.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맑은 날에는 산의 맑고 깨끗한 풍광 앞에 어버이의 따뜻한 품에 안기듯이, 또 비와 구름과 눈과 바람속에 변화많은 표정앞에는 어버이의 준엄한 꾸지람이나 스승의 높은 교훈을 듣는듯이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할 것이다. 산에 올라 산을 즐긴다고 응석을 피우는 것같은 일은 용서될 수 없을 것이다.

<엄격한 단련거쳐>
적어도 등산이라고 하면 일정한 과제와 방법을 택하여야 하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냉철한 과학적 탐구의 정신과 엄격한 단련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리하여 등산에요구되는 종합된 기술과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 경우에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것은 「하이킹」이란 것과 「하이킹」할 때의 홀가분한 태도-즉 단순히 산천의 풍광을 즐겨 소풍을일삼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루 쉬는 날에 북한산이나 도봉산 근처를 다녀오는것도 좋고 또 봄·가을 일기 좋을 때 명산을 찾아 높은 봉우리를 더듬는 일도 좋다. 그러다가 혹시 지리산 청왕봉이니 한라산 백록담을 찾아갔었다고해서 그것이 곧 등산이되고 등산가의 이름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죽을 뻔하고 다뎌왔다고 위험의 돌파를 자랑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요행 생명을 부지했다는 말이 될 뿐일 것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조건밑에 계획된 등산을 한다고 해서 무슨 모험을 즐겨서 죽을 고비를 헤매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산은 낮다고해서 결코 얕잡아 보아서도 아니될 것이고또 산이 높다고 해서 결코 무서워만 해서도 아니된다. 문제는 오르기 어려운 봉우리나 암벽에 달라 붙었을때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오를 수 있으며 또 준험하고 공기도 희박한 높은 산의 맵고 사나운 추위와 눈보라 속을 어떤 방법으로 먹고 자며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비록 인간의 제한된 적은 능력이라고 하지만 장엄한 대자연의 접근키 어려운 위험속에 뛰어들어 어떻게 적응하며 조화될 수 있느냐 하는 귀중한 시험의 기회를 찾는 것이 계획된 등산인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일찍이 경험치 못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스스로 북돋워 나갈수 있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이러한 등산의 정신적 목표는 실로 우리들의 일반사회 생활에도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단결과 협력정신>
결론을 지어 말한다면 등산운동은 청소년의 의지를 길러주는 운동이요, 모든 어려움에 대처 할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경험에서 쌓아올린 능력을 갖추게 할 것이고 그리고 신의로 결합된 공동책임감에서 단결과 협력의 정신을 기르는 고귀한 생활의 훈련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등산운동에는 넓은 운동장의 많은 관중 앞에서 승패를 가리는 운동경기에서 보여주는 박수갈채를 노리는 것 같은 공명심이란 털끝만큼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산은 어떤산에 오르느냐가 반드시 문제될 수 없다. 왜 오르며 어떻게 올라가느냐 만이 문제일 것이다.산에 오르는 일을 자랑삼고자 멀고 높은 곳에만 눈이 팔려 바로 내 발밑을 살피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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