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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맹세' 위헌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로스앤젤레스 샌 페르난도 밸리에 있는 한 학교의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고 있는 2001년 10월 자료 사진.
미 연방 항소법원은 수요일(이하 현지시간) '하나님이 보호하는'이라는 문구는 '종교를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하나님이 보호하는'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도록 하는 법률은 지난 1954년 의회에서 제정됐다.

미국 제9순회항소법원의 3명의 판사는 이 사건을 하위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하위법원이 이를 수용한다면 이번 판결은 제9순회항소법원이 관장하는 9개 주의 학교들에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연방 및 주정부와 지방 학교 이사회로 구성된 피고인단에게는 재심을 요청하거나 대법원에 직접 상고를 의뢰할 수 있다는 선택권이 남아있다.

존 K. 빈센트 변호사는 "제9 순회항소법원의 결정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판결을 뒤집기 위해 법무부와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미국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하나님의 보호아래 나누어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베푸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미국 상원은 이 판결에 격노했다. 상원은 99명 전원이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상원위원회가 이 사건의 중재에 나서기를 촉구했다.

한편, 수요일 오후 100~150명의 하원의원들은 국회의사당 밖 계단에 모여 지지의 표현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하기도 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이번 판결을 '어리석은(ridiculous)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피셔 대변인은 "백악관의 견해는 이번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이며, 현재 법무부가 판결을 되잡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판결이 미국인들이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확실한 것은 미국 대통령도 이번 판결이 바른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결문 취지

제9순회항소법원은 판결에 근거가 된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현재 성문화돼 있는 맹세 조항은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다. 이 조항으로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국가의 완벽한 성원이 아닌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갖게 하고, 지지자들만이 국가의 혜택을 받는 인사이더라고 여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법원은 "'하나님이 보호하는'이라는 문구는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1954년에 삽입된 것으로, 사실은 정부가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국가의 이름으로 공격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며 "연방정부도 이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원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하나님이 보호하는'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법안에 서명하면서 "오늘부터 수백만의 학생들이 매일 모든 도시와 마을, 농촌 교사들에서 이 국가와 국민이 전능자(Almighty)에 대한 헌신을 선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법원은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종교적 기도문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의 최근 판결을 인용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순회항소법원은 "맹세문에 들어있는 '하나님'이라는 문구는 의례적인 것으로 특정 종교의 신념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소송을 기각한 하급법원의 판례는 위와 같은 최근 대법원 판결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판결에서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보호하는 국가'라는 암송문은 단순히 다수의 미국인들이 신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단순히 종교가 미 공화국 건설 당시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차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아래 한 국가'라는 문구는 문맥상 규범적이다"라고 밝혔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는 것은 미국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분리 불가능성, 자유, 정의 그리고 1954년 이후 포함된 일신교 사상 등 국기가 상징하는 가치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외곽에 위치한 엘크 그로브의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딸을 둔 무신론자 뉴다우는 미국과 의회, 캘리포니아주 및 2개의 교육구와 그 담당자들을 상대로 이 소송을 제기했다.

소수 의견

정부는 '하나님이 보호하는'이라는 문구에는 종교적 의미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한 교사들이 강제 시험을 치렀으며, 무신론자나 비유대계 그리스도 신앙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이를 일신교의 종교적 정통성을 강요받는 것으로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뉴다우는 법원의 판결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을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명의 판사들이 만장일치로 판결을 내렸던 것은 아니다.

페르디난드 페르난데스 순회판사는 판결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인 관점에서 반대한다며 "이 나라 국민들에게서 모든 종교의 흔적을 없애고자 하는 이들의 눈에만 그렇게 비춰질 뿐, '하나님이 보호하는'이나 '하나님의 믿음 안에' 같은 문구에는 국가의 종교를 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라고 말했다.

페르난데스 판사는 "나는 오늘 나의 동료들이 다수 판결로 헌법에 대한 뉴다우의 견해를 수락함으로써 우리가 대다수 공공장소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되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주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나 '아름다운 미국' 등의 문구는 분명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성조기여 영원하라(Star Spangled Banner)'의 1, 2절은 불러도 될 테지만 3절은 금지될 것이다. 그리고 화폐도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제9순회항소법원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 법원이며, 법학자들 역시 가장 진보적인 판결을 내놓은 법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알래스카,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하와이, 아이다호, 몬태나, 네바다, 오레건, 워싱턴 주 등이 이 법원의 관할 하에 있다.

분노한 의회

미 의회의 찰스 그래슬리(공화당·아이오와) 상원의원은 이번 판결을 '미친 짓'이며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면 뒤집힐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슬리 의원은 "이번 판결은 대다수 미국인이 생각하는 바와 미국에서 유지되고 있는 문화 및 가치에서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다. 이 문구를 제외하자는데 찬성하는 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의원직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의 데니스 해스터트(일리노이) 공화당 대변인은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또한 리차드 게파트(미주리)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는 "이 판결은 말이 안된다"며 법원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이번 판결은 심각하게 고민해 내려진 것 같지 않다. 이런 판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법정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판결이 달리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SAN FRANCISCO, California (CNN) / 이정애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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