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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13년 눈에 묻혀 순직한 벽지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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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졸업선물을 품에안은채 눈더미속에 파묻혀 죽은 벽지국민학교 정영걸교사(34)의 장례식이 거행된 16일에도 동해안일대에는 무심한 폭설이 연이어 펑펑내렸다. 이날 상오10시, 접적지역인 고성군현내면 죽정국민학교 교정에서는 사흘전 졸업기념 선물을 한아름 사가지고 돌아오다 눈더미속에 파묻혀 순직한 정교사의 장례식이 3백20여명의 어린이들과 6백여명의 학부형이 오열하는속에 거행되었다.
쓸쓸한 스승의 마지막 가는길에는 고사리손들이 정성들여 만든 조화가 영구위에 덮였고 그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재학생을 대표한 황화진군(12·졸업생)이『「착하게 성실을 다하라. 그리고 즐겁게 뛰어 놀아라」고 항상 격려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이제는 다시 들을수 없게됐다』고 울먹이며 조사를 읽어내려가자 장내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남달리 책임감 강해>
13일 정교사는 졸업기념품구입과 사진촬영을 교섭하라는 송태학교장선생의 부탁을받고 이날하오1시30분쯤 점심도안먹은채 4.8킬로미터나 떨어진 거율을통해 눈길을 걸어서갔다. 그곳에서「아카데미」사진관과 사진촬영계약을 마친 정교사는 흥덕문구소에 들러 기념품 1만2천원 어치를 사들고 밤8시쯤 다시 죽정리에 돌아오는 길을 재촉했다.
떠날때부터 내리던 눈은 이내 눈보라로 변해 지척을 분간할수 없을만큼 휘몰아쳤다. 어둠속에서 얼마나 눈더미속을 헤매었는지 정교사는 다음날아침 눈을치고있던 죽정리최동열씨에의해 학교가 뻔히 보이는 마을앞 3백미터지점의 개울에서 온몸이 반쯤 눈에 파묻힌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56년 강릉사범을 졸업, 13년간 교직생활을 해온 정교사는 벽지학교의 어려운환경속에서도 책임감있고 성실한교사로 널리 알려져왔다.

<유족은 부인과 남매>
그는 끼니를 굶고 등교하는 반어린이 10여명을 집에데려다가 항상 점심을먹여 졸업을 시켜온걸로 알려져왔으며, 초임한 56년 경북울진군내 평호국민학교에 있을때는 우수한 성적으르 졸업했으나 돈이 없어 진학못한 이재범군에게 봉급을 털어 납입금을 마련해주어 6개월동안 고생을했었다는 그였다.
집에 남긴 그의 유산이라곤 되쌀3되와 연구교재13권이 있을뿐, 마침 시가제사를 보러 강릉에 가 있었던 부인 조연옥씨(28)는 정교사의 부음을 듣고달려와 두번이나 실신하기도했다. 유자녀로는 두남매가있다. <속초=장창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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