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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의 동경대 분쟁 | 맹휴 1년…수습 길은 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의학부 맹휴이래 1년 가까이 계속된 일본 동경대학 분쟁은 지난 10일에 있은 7학부 집회를 분수령으로 수습에의 숨길이 터졌다. 지난 9일 경찰 기동대의 학내 도입이란 험악한 대립을 겪어느나 11일에 교양학부와 법학부 경제학부 이학부 등 4개 학부가 맹휴 해제, 이어 농학·교육학 양학·공학부 등이 각각 맹휴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따라 작년 말 입시 중지란 최악의 사태 하에선 아무도 예측 못했던 기적이 이뤄져 대학 당국은 다시 입시 회복까지도 내다보게 된 것이다.

<약해진「전학공투」>
동대 분쟁의 주도권을 잡아온 「전학 공동 투쟁 회의」(반 일본 공산당계=반대대목계)는 한때 전국에서 8천명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10일 대대목계와 벌어진 안전강당쟁탈전에선 퇴조의 빛이 역연했다. 경시청 조사에 의하면 이날 「전학공투」가 동원한 인원은 1천 8백명으로 대대목계 2천5백여명에 수로 눌렸었다. 한때 1만 4천명의 총학생을 이끌고 전학맹휴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했던 「전학공투」가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의 임문학 부장 연금 사건 대부터였다.
이어서 종합 도서관이나 교양학부에서 열리 대의원 대회에서의 대대목계와의 난투 사건 등 연이은 폭력 경향이 일반 학생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전학공투」로선 『파괴 이외엔 분쟁 해결은 없다』는 신조 때문에 「에스컬레이트」라는 「게발트」와 각봉·철모 등 무기가 폭력을 부인하는 지원 학생을 이탈시키는 자극제 역할을 하고 말았다. 「전학공투」의 약화와 함께 ①입시 중지·휴교·폐쇄가 동대 붕괴에 직결된다는 위기의식이 학생들간에 만연돼 있고 ②유년이나 졸업 연기를 피하고 싶은 학생 심리가 작용했고 ③7학부 집회가 원만히 끝나고 학생 대표단과 총장 대행 사이에 확인서가 작성되어 학생 요구가 거의 받아들여졌다는 만족감도 작용해서 동대는 급전직하, 분쟁 수습에 일보 전진한 것이다.
수적으로 열세하고 고립된 전학공투의 투쟁은 방치해 놓고라도 학교 당국은 『입시를 실시하고 싶다』는 의견을 문부성에 내놓을 구실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문부성과 학교 당국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현재의 환경」을 진전으로 보고 극적으로 입시 부활에 동의한다고 해도 반대대목계에선 수업 재개나 입시를 방해하는 극한 투쟁을 벌일 염려는 아직도 남아있다.

<확인서 싸고 이의>
이런 점 문부성이 주장하는 『신입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학원의 질서나 교육 환경을 회복할 것』이라는 조건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문부성으로선 반대대목계가 점거 중인 대학 본부의 안전 강당이 풀리지 않는 한 질서 회복이라곤 볼 수 없기 때문에 「입시 중지론」이 아직도 강력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자민당을 비롯한 대학 밖에서 7학부 학생 대표와 가등대학 총장대행사이에 교환한 「확인서」에 대해서도 비판과 이의가 대단하다.

<해결 기미 안보여>
가등 총장대행이 수습에 성급한 나머지 일본 공산당 계인 대대목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는 비판이다. 학생들의 권리를 과분히 인정해서 사태가 수습된 후에 여러 가지 학교 당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 요인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대학 당국과 대대목계 일반 학생이 일체가 되어 맹휴 수습에 반기를 들고 있는 반대대목계와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지? 실력행사가 격화될 소지는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의학부와 문학부는 당분간 맹휴를 종식시킬 빛이 없다. 입시는 치러야 한다는 지배적인 여론 때문에 분쟁은 겉으로 사그라진다 치더라도 전면 해결의 가망은 없다. <동경=조동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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