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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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전국「버스」조합 연합회장의구속사건-.
전국의 「버스」요금을 인상하기 위해 그 교제비조로 무려 4천2백만원을 거둔 혐의이다. 이 연합회는 이사회 합의로 전국의「버스」차주 들로부터 대당 1만원씩 합계 8천만원의 모금을 목표로 했었다고 한다. 4천2백만원은 그 일부라고 보고되고 있다.
이 교제비는 마땅히 관계당국과의「교제」를 위해 씌어질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저쪽의 잠재적인 수회(수회)혐의도 엿볼 수 있다. 교제비를 받았든, 안 받았든 그것에 상관없이, 그 돈을 줄 수 있다는 묵계가 업자들 사이에 오고갔던 것만은 지적할 수 있다.
관계당국의 종래 태도가 분명했다면, 업자들은 교제비를 거두는 따위의 궁리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 경우는 공모나 다름없다. 사회의 묵계된 공모 분위기, 실로 이것처럼 무서운「커럽션」(부패)은 없다. 이번「버스」요금인상 소동은 바로 그런 단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경우이다.
더우기 불쾌한 것은 그「교제비」가 결국은「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의「직접부담」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차주들은 「버스」영업의 이익금에서 그것을 지불했을 것이다. 시민은 「버스」요금인상을 위한 교제세(?)까지도 부담한 셈이다.
그러나 검찰당국이 이번 사건에서 업자 편만 문책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공모자중에서 어느 한편 만을 나무라는 각이 되기 쉽다. 수회 혐의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그쪽에도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법의 이성이다.
더구나 수사의 시기를 의식적으로 어느 시점에 맞춘 것도 법의 이성은 아니다. 법은 혐의자를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보호하는 입장을 갖기 마련이다. 이번 사건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코너·킥」에서 심판은 적대「팀」의 전열이 정비된 다음에야「휘슬」을 분다.
검찰은 바로 그「페어·플레이」정신을 외면한 것 같다. 수사를 하려면 이보다 훨씬 이전에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제비모금은 작년 11월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법은 권력자의 편리한 도구는 아닌 것이다.
이런 단면들은 「버스」요금 인상설 이상으로 불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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