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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살았으면(5)공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차례대로 타세요>
서울 용두국민학교 어린이들은 『줄을 서서 차례로 타주셔요』『어린이를 보호하셔요』란「플래카드」를 들고 서울거리에서 색다른 행진을 했다(66년3월).
이 대열은 동교 박국희양이 상도동「버스」종점에서「버스」에 타려다 먼저 타려던 어른들의 비정한 손에 밀려 차 밑에 깔려 죽은데 항의하는「데모」대열이었다.
서울역개찰구를 나와 호남선완행열차를 타기 위해 달리던 승객들이 서로 밀치는 바람에 70여명의 압사상자가 났고 부산공설운동장에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는 관중의 혼란으로 62명이 생명을 잃기도 했다.
당연히 지켜야 할 질서를 내가 지키지 않고 또 남이 지키리라고 믿지 않는데서 불신을 낳고 불신은 꼬리를 물어, 생각 밖의 각종 큰 사고원인이 된다.
단3백원의 고철수입을 위해 거리의「맨·홀」을 그냥 도둑질인 줄로만 여기고 뜯어간 때문에 4살짜리어린이가 빠져 죽어 결과적으로는「살인」 행위를 한 것이 되기도 했다(68년3월).
명절때의 서울역이나 극장가는 표를 팔기 시작하기가 무섭게「매진」이란 푯말이 나붙는다.

<「매진」뒤의 암표>
「매진」푯말이 나붙은 채 역사주변에선「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암표상이 철을 만났다고 날뛴다. 줄에 서서 당국의 공정한 매표를 기대하기보다는 몇푼더 주고 쉽게 사고 편하게 앉아 가는 것이 득이라는 이상한 방정식이 성립된다.
「택시」타는 곳을 마련해 보았지만 길게 줄을 선 승객들도 1명의 새치기꾼이 생김으로써 질서를 잃고 혼란을 빚고있다.
이단자를 막는다는 것보다 다른 새치기꾼이 또 나올까하는 불신에서 취해진 행동.
전차가 서면 승객이 내리고 탈 때까지 다른 차량은 일단 멈춘다는 교통규칙을 믿고있던 이우영군(재동국민교1년)이 좌석「버스」에 치여 죽었다.(68년5월). 횡단보도나 정류장 앞에서 행인들이 오히려 차량의 눈치를 보게되는 주객전도의 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변두리 거주자들은 으레「택시」운전사들의 눈치를 살피고 웃돈까지 붙여주게 된다.

<냉냉한 이웃협조>
만원「버스」에 서있는 노인의 눈길을 피하거나 잠든체 하는 젊은이에게「양보」를 기대할 수 없고 모두 그렇다보니 일어서는 젊은이가 오히려 겸연쩍게 됐다.
도둑이 든 집에서 동네사람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도둑이야』대신『불이야』라그 소리쳐야 할 정도로 이웃 간의 믿음도 적어졌다.
공중질서를 잘 지켜 20년간 무사고운전을 해왔다는 박창규씨(45)는『사고를 내지 않은 것이 후회될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박씨가 운전하는「코로나」에는「모범운전사」란 푯말이 걸려있다.
박씨는 이 영예로운 상패 때문에 득보다 손해가 많다는 것이다.

<손해보는「모범」>
우선 어느 운전사나 떳떳이 하는 합승행위도『모범운전사도 합승행위를 하느냐.』는 승객의 말을 듣기 거북해 하기 어렵다했다.
사소한 잘못으로 경찰관에게 적발되어도『모범이 될 사람이 이래서되겠느냐.』는 점잖은 일침에는 말문이 막힌다는 것.
한달에 한번씩 꼬박 서울시에 가서 교양강좌를 받아야 하고 두 번씩 동료·후진들에게 강의를 해야한다.
차주는 다른 운전사보다 수입을 못 올린다고 투덜거리지만 웬만한 것 다 지키다보면 항상 남에게 뒤지게 마련이라 했다.
동료들이나 승객들로부터 「완행」이란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은 박씨는『공중질서를 지킨다는 것이 오히려 안 지키는 것보다 어렵다』했다.
고대 이상은 교수는 『우리국민은 공중도덕에 관한 훈련이나 공동생활의 습관이 적어 의무에 앞서 권리만을 주장하는 경향이 짙다.』고 진단하면서 교육을 통한 국민각자의 각성만이 해결의 길이라고 말했다.

<시급한 자질심사>
서울여대 김경동 교수도 가정·학교·사회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는 공공질서에 대한 존경심을 앙양시킬 수 있는 교육분위기가 절실하다면서 특히 운전사·「서비스」업체 종업원들은 일정한 자질심사를 거쳐 선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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