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정치의 향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닉슨 행정부의 출범, 동구에 대한 소련의 압력 강화, 서구의 불안과 집단 안보의 재강화, 전쟁 일보전의 중동 사태. 중공 문화 대혁명의 일단락 등 다분히 유동적인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는 69년을 맞이했다. 이 한해 한국에 있어서는 70년대를 이른바 「결정적 시기」로 상정하고 그 이전에 남한에서 베트남 전형의 유격전을 시도해 보려는 북괴의 군사 도발 공세가 더욱 강화되리라는 판단이 유력하다.
내외 정세가 이처럼 다사다난한 것으로 예측되는 환경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와 대의 민주 정치는 그 지표를 어디에다 두고 움직여 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의 소신과 요망을 밝히기로 한다.

<조용한 정책 대결>
첫째, 우리의 대의 정치는 우리를 둘러싼 내외 정세가 엄중할수록 조용한 정책 대결을 해나가는 가운데, 입법부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도 지난해 여름부터 우리 국회 주변에는 되도록 극한 대립을 피하고 토론·설득·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기풍이 싹트기 시작했었다.
금년 우리의 국회는 이 모처럼 싹트기 시작한 『대결하면서 협조하는 「무드」』를 더욱 성숙시켜 의회 정치 운영의 올바른 전통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다수당이 수의 위력을 믿고 독선 횡포하여 일방적으로 표결을 감행하는 등 악습은 버려야 할 것이고, 또 소수당은 절망적인 반항심에서 나온 극한 투쟁을 버리고 현실적인 면에서 무엇인가 다소라도 실리를 얻는 방향에서의 투쟁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적 다수결이 다수 의사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단순·다수결」이 아니라 소수파의 입장에서도 능히 참고 따라갈 수 있는 「다수·소수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구차스러운 설명을 필요치 않는 바, 앞으로 우리 국회에서의 수적 결제는 다수결이 항상 「다수·소수결」이 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다수파는 소수파의 존재와 권리를 십분 존중하여 소수파가 그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길을 넓게 열어주어야 하며 관용과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여 소수파와의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는데 조금도 인색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소수파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주장은 절대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절대로 잘못이라는 독선적인 견해를 버리고, 자파가 다수파의 양보를 바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반면에 자기 역시 아집을 버릴 필요가 있음을 똑똑히 인식해야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까지나 상대주의의 기초위에 서 있다는 것을 쌍방이 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 신임의 회복>
둘째로 여야 대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국리민복의 구현에 있음을 늘 머리 속에 두고 의회 정치를 운영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최근 수년내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 부재의 정치」라는 말이 일종의 유행어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 운영에 참가하는 국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여야 당리당략의 야합 무대로 타하고 혹은 국회의원들 자신의 권익 옹호에만 급급한 나머지, 흔히 국리민복의 구현을 외면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 한 해 입법부 활동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예산 심의나 소위 보장 입법 구현에 있어서 국회가 이런 비난을 뒷받침하는 듯한 여러 실례를 보여 주었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국민 가운데에는 국회를 자기와는 무연한 것, 또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관념 하는 자 결코 적지 않았다. 「국민 부재」의 국회가 국민의 철저한 불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유추하게 되면, 그 나라 대의 정치는 기실 없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의 대의 정치가 이미 이런 위험한 단계에 도달했는가에 관해서는 판단이 구구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는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존재로 화해간다는 사실을 직시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이 「매스·데모크라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국회와 또 그 대중과의 연결체로서의 정당은 체질 개선을 대담하게 서둘러 그 존재를 대중 사회의 저변과 밀착시키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

<국회·행정부의 자가 반성>
세째로 국회는 그 위신과 권능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것이며 행정부는 입법부의 권능을 어디까지나 존중해주고 선거구민은 되도록 국회의원을 괴롭히지 않는 정치 풍토를 확립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국회의 위신이 추락된 것은 국회나 국회의원이 올바른 자세를 확립치 못한데도 있지만, 행정부에도 국민에도 그 일부의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회가 국회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3자가 공히 제각기의 입장에서 반성하고 그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국회는 스스로 부정 부패를 추방하는데 과감해야할 것이며 국회 내에 번진 「검은 안게」 운운의 혐의에 대해서는 그 종류나 크기 여하 불문하고 이를 엄격히 조사하고 과감히 처단해 나가도록 해야한다.
다음 행정부는 삼권분립제에 있어서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행정부 권력과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는 입법부의 권능이 얼마나 중목대한가를 절실히 인식하고 입법부가 그 권한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양부간의 권력 관계를 현실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하겠다. 우리의 권력 구조에 있어 양부는 서로 「체크·앤드·밸런스」의 관계에 서있는 것이지 결코 그중 일자가 타자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끝으로 유권 대중은 국회의원을 일종의 사복처럼 생각하고 투표권을 갖고 있음을 기화로 갖가지 무리한 청탁을 가지고 국회의원을 괴롭혀 그들로 하여금 공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데 지장을 주는 종래의 악습을 반드시 청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