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가정폭력 당하고 살아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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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천안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지도 벌써 6년째다. 그동안 이혼상담을 하면서 가장 먼저 묻고, 가장 크게 비중을 두는 항목이 달라졌다.

뭔고 하니, 바로 “혹시 남편(부인)이 당신을 죽이려 하지는 않을까요?”라는 말이다. 즉 요즘은 텔레비전만 틀었다 하면 이혼을 요구하는 배우자 혹은 이별을 요구하는 애인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 투성이고 실제 한국여성의 전화에서 지난해 남편 혹은 애인에게 살해된 여성들의 통계(전체 살해된 여성이 아니라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집계)를 낸 결과 총 200명이 넘었다고 하니 필자 역시 그 무엇보다 중요한 ‘목숨’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담당했던 사건들 중에 “죽여버리겠다” 혹은 “너 죽고 나 죽자”며 협박하는 배우자(특히 남편)가 다수 있었고 이로 인해 이혼소송 중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 등의 결정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드물게는 당사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재판 기일에 법정경위 등이 법정에 다수 배치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은 어쩌면 사후적인 조치일 수 있다. 즉 위와 같은 조치가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 이루어진 경우라면 다행일 것이나 이미 일이 저질러진 후라면 무용한 것이 될 우려도 많다. 이에 현실적으로는 소송을 제기하기 전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거나 ‘쉼터’(보호시설) 등에 머물며 소를 제기하고 그 밖에 법원의 사전처분, 피해자보호명령 등을 통해 신변의 보호를 받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유유희 변호사

피해자보호명령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경찰 등의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법원에 직접 보호를 요청하는 제도로 지난 2011년 7월 25일 이미 도입된 것인데 이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거의 청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당사자가 이혼소송 전 미리 도피하거나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 혹시 되려 자신이 무단가출로 동거의무를 위반한 유책배우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이에 재판상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원은 거듭되는 상대방의 협박으로 생명에 위험을 느껴 피신하거나 일시적으로 집을 나와 별거하며 소송에 이른 경우에는 이를 동거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이처럼 가정폭력에 대한 갖가지 법률, 제도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저 무기력하게 혼인생활을 지속하거나 혹은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가도 협박에 못 이겨 중단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물론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심정이 참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자각이 계속되고 있고 실제 상술한 것과 같은 여러 제도들이 운용되고 있는 이상 피해자 스스로도 가정폭력에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하는 독립적인 자세와 용기를 갖춰야 할 것이다.

유유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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