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기만알았다|자수공비 조응택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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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장공비잔당 가운데 지난7일 아군작전부대에 자수해온 북괴군124군소속 중위 조응택(24)은 14일상오 기자회견에서 『김일성이 동족을 학살하라고 살인마 되기를 강요, 민족의 분노를 느껴 자유대한으로의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는 북괴124군3기지 1중대1소대3분대소속 소환으로 지난11월초 울진지역에 침투한 60명조와 함께 상륙했다가 지난달 1월11일과 15일·27일 3차례에 걸쳐 아군합동작전부대와 교전, 15명조중 9명이 죽고 단독분리되어 헤매오다 아군작전부대에 자수해온 최초의 공비다.
명랑하고 생기에 찬 모습으로 기자질문에 평안도사투리로 답변한 조는 김신조의 투항을 권하는 살아있는 음성을 듣고 자수를 결심하게됐다고 말하고 북한에 있을때 탈출해온 이수근씨의 대북방송, 가끔 들을수 있었던 서울의 방송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한가를 상상해왔다면서 방송을 들으며 익혔다는 「대머리총각」을 불러 박수갈채의 환영을 받았다.

<기자와의 일문일답>
문=자수동기는?
답=김일성선전으로는 남한의 생활상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은 판잣집일뿐더러 농촌농가가의 항아리는 거미줄이 쳐져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고 들었다.
그나마 침투된후 배가고파 농가에 내려가서 밥을 훔쳐먹을때 따뜻한 이밥이 언제나 있었고 항아리에는 곡식이 가득했다. 또 화전민이라는 농민들이 북한에서는 신사같은 옷을입고 있어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김신조가 직접투항을 권고하는 방송을 듣고 자수를 결심했다.
문=아군과의 조우경위는?
답=지난달 11일하오2시쯤 우리15명조는 국군과 만나 교전했다. 그때 9명이 죽었다. 동료 4명과 함께 북상중 15일하오3시 다시 교전, 도주하다 27일하오2시 또 국군이 습격해와 완전히 분리되어 혼자 헤맸다. 민간인 밥을 훔쳐먹으며 양지와 물을 찿아 숨어 지냈다.
문=124군부대는 어떻게 들어갔나?
답=나는 17세에 입대하여 포병대에 있었다. 67년7월 연대간부가 군관학교에 보내준다고 몇명의 다른 동료와 함께 데려갔다.
이해 10월20일 군관학교라고 들어간곳은 283공작부대였다. 여기서 3개월 훈련받고 68년1월에 124군에 배속됐다.
문=283부대를 더 설명해 달라.
답=이부대는 중앙당직속대남공작부대이다. 5인조로 그중1명이 남한에 친척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구성, 주로 대남지하공작활동을 기본목표로 「게릴라」전·무장습격훈련을 받는다.
문=124군의 유격훈련은 어떤가?
답=남한에 침투, 민심교란을 목적으로 휴전선침투훈련·도하훈련·등산과 권투·유도·사격술을 체계적으로 연마 1대5의 강한 체력을 단련한다. 학살방법도 가르쳐 인체의 16개 급소와 단도사용법도 배운다. 30킬로의 모래를 달고 1시간 10킬로 이상의 행군훈련은 말할것도 없다.
문=공비들의 양민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나?
답=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라는것이 지령이었다. 동족을 무차별 살상하니 민족의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다.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죄인이다.
문=김일성우상화는 어떤가?
답=일반편지에도 서두에 김일성말을 써야할 정도다.
문=「푸」호 납북때 북괴동향은?
답=미7함대와 전쟁한다고 원산시민을 모두 철수시키고 상공에 4백대의 항공기·박격포등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문=자유대한의 느낌은?
답=자동차가 너무 많아 전차까지 철수될 정도니 듣던것과는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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