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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에 영원담고|8년만에 시집내는 서정주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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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향토적인데서 가장 대표되는 시인 미당서정주씨(동대교수)가 최근 다섯번째의 시집 「동천」을 냈다.「신라초」이후 8년만에 50편의 시를모아 엮은 그는 『귀신을 기를만큼 지긋하지는 못해도 귀신들하고 상면은 되는나이』53세. 나이도 그러려니와, 그만큼 시도 무르익었음을 스스로 자랑하는 시집이다.
그가 사는 서울 공덕동 언덕바지 301번지. 들국이며 대추나무등이 옹기종기 심어있는 허름한 기와집도 미당은 그대로 시속에 담고있다. 수수한 한복차림과 남도의 걸쭉하고 느린 사투리까지를 시의 격조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전을 뜯어 읽으며 손자와 마주 이야기하며, 혹은 담너머 먼풍경을 내다보며 시를 쓰고있음을 말한다. 아주 대수롭지않은 일상의 대화들로 그의 시는 짜여 있는 것이다.
그는 한잔술을 앞에 놓은뒤 비로소 시집을 꺼내든다. 『선운사고랑으로 동백꽃을 보러갔더니/동백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섞이어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쉬어 남았습니다』
길게 쓰면 겁이 난다고 토로한다. 벌거숭이 같은 육성이나 외침을 벌써 그는 까맣게 잊고있다. 초기의 시집「화사집」「귀촉도」에서 꿈틀거리는 젊은날의 숨가쁘고 폭발적인것이 「동천」에선 싹가셔 흔적조차 없다. 『예술로서는 조잡한것』이었다고 그는 한마디로 풀이한다.
1936년에 그가 「시인부락」동인으로 출발할 당시만해도 우리나라의 시는 싹으로 자라던때. 그의 토속적인 말씨에는 서구상징주의 문학의 기교와 호흡이 깃들여 있었다. 보다 내것에의 관심이 「신라소」에 드러나있지만 『역시 설익은 시도였다』고 그는 스스로가 평가해 버린다.
『눈에 보이지않는 불가시적 인과에 참으로 큰 아름다움이 숨겨 있습니다. 나에게 「와이샤쓰」를 판 여점원은 가시적 한계를 벗어날수없지만, 그감을 만든 직공, 목화를 가꾼 농부에 생각을 미친다면 영원속의 생명을 느끼게 됩니다.』
거문고를 팔아 「피아노」를 사놓고 두드린다. 문제는 다만 정신의 대화-. 한참 창밖을 내다보더니 그는 머리맡에 건 추사「난죽도」의 화제를 암송한다. 『…고금을 함께 비침은 오직 달뿐이라 큰잔 술들어 고수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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