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쟁

국제중 존폐,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서울 영훈·대원 국제중의 입시 비리가 연이어 터져나오자 서울시 교육청은 비리의 온상이 된 서류 전형을 폐지하고 완전 추첨으로 선발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입시 명문 귀족학교인 만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리는 잡되 질 좋은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수요까지 외면해선 안 된다”는 반박이 맞선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비리 뿌리 뽑되 질 좋은 교육은 보장해야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서울의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이 최근 입시 비리로 계속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적 기관인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입시에서의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데도, 두 국제중에서 나타난 입시 부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의 비리 종합 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영훈국제중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시비에 이어 특정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다른 학생의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확인된 부분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잘못이 있는 부분은 철저하게 수사하고, 입시 비리에 가담한 사람은 누구든 엄격한 잣대로 처벌해 입시 부정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제중은 현재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을 포함해 전국에 4개가 있으며, 2014년과 2015년 울산과 대전에 추가로 설립될 예정이다. 국제중의 설립 취지는 ▶글로벌 인재 양성 ▶해외 귀국 학생의 국내 학교 적응 유도 ▶조기 유학 수요 흡수 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에 대한 요구를 보장하고 국내에서 외국에 갈 필요 없이 질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다. 통계청이 2011년 발표한 조기 유학생 수가 아직도 1만6515명에 달하며 제주영어교육도시나 송도국제도시의 국제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2009년부터 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한 일부 국제중의 입시 비리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경쟁을 유발하고 특정 계층만을 위한 ‘귀족학교’라며 국제중 전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제중에 대한 수요가 과열될 정도라면 공급을 늘려 다양한 교육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줄 필요가 있다. 조기 유학으로 인해 홀로 살아가는 소위 ‘기러기 아빠’ ‘독수리 아빠’ ‘펭귄 아빠’들이 20만~30만 명에 이른다는 것은 분명 해결해야 할 비정상적인 사회 현상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최근 불거진 서울의 국제중 입시 비리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사회통합 전형으로 개선하고 신입생 전원을 추첨하는 새로운 학생 선발 방식을 발표했다.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취약 계층에 대한 우선 선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사회통합 전형 추진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2015학년도부터 지원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공개추첨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되면 국제중 본래의 설립 취지가 퇴색할 가능성이 있다. 공개추첨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무관하며 조기 유학이나 귀국 학생의 부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지와도 전혀 상관이 없는 비정상적인 방식이다. 현재 과도한 지원 서류 작성이 부담이라면 지원 서류를 간소화하면 될 것이고, 지원 학생의 서류 심사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이 3배수로 학생을 선발한 후 공개추첨을 하는 것이 국제중 설립 취지에 맞다.

 이번에 일부 국제중의 입시 비리로 시작된 국제중 제도 자체에 대한 폐지 논란을 계기로 국제중학교가 투명하게 운영되기 위해 한 단계 도약할 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입시의 공정성은 교육기관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교육청도 다시는 입시 부정과 학교 운영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 장치를 철저히 마련하길 바란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사교육 키우고 초등교육 왜곡시킬 뿐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은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부정과 비리를 연출해 왔다. 양파껍질 벗기듯 불거져 나온 비리는 결국 서울시교육청으로 하여금 극약처방을 내리게 했다. 내년부터는 국제중에서 서류전형을 폐지하고 공개 추첨으로 선발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비리가 발생한 부분에 대한 대증요법일 뿐,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국제중의 존립 근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수월성 추구를 위한 특성화 학교는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학교가 반드시 중학교 급에 존재해야 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이가 어릴수록 우수학생은 부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성화 중학교를 설치하더라도 우선순위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 두는 게 맞다. 수학과 과학은 언어와 외국어보다 영재성이 뚜렷하고 선천적 능력이 강하게 작용하며 개인 차이도 크게 나타난다. 국제중에서 우선시하는 외국어 능력은 부모의 사회·문화적 자본 등 후천적 요인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기에, 국제중 합격생은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된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국제중이 전원 추첨으로 선발하더라도, 국제중 관련 사교육 수요가 다소 영향을 받을진 모르지만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입학 후 영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영어 디베이트 학원, 그리고 국제중의 차별화된 커리큘럼에 대비하는 중학교 내용 선행학습 등 사교육이 침투할 공간은 많다. 또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의 이러한 대비를 위해 사교육이 저학년과 유아로 조기화되는 현상도 여전할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대입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전인교육이 이루어지고, 그런 측면에서 초등학교 교육은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국제중의 존재는 건전한 초등교육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08년 당시 국제중 설립이 탄력을 받았던 이유는 급증하는 조기유학 수요를 국내에서 건강하게 흡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외유학은 해당 국가의 제반 환경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이지 외국어 습득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국제중은 조기유학의 대체재가 되지 못한다. 국제중이 장기 해외거주 학생의 국내 학교 연착륙을 돕는다는 명분도 무색해졌다. 국제중 재학생 중 그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국제중은 설립 취지와 무관하게, 특목고 티켓을 보장하는 입시명문 귀족학교일 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대로 완전추첨제로 선발할 경우 글로벌 인재 육성이라는 국제중의 설립 취지를 부정하는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국제중 폐지와 관련해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약한 입장은 비리를 보인 국제중에 한해 인가를 취소하고 일반중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강한 입장은 국제중 존립의 타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은 경미한 선발제도 보완을 지렛대로 국제중을 존속시키자는 것이므로 약한 입장보다도 더 약한 입장이다. 전술(前述)한 대로 보편교육을 지향해야 할 평준화된 의무교육기간에 외국어를 위주로 하는 특성화 중학교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국제중은 자유학기제 등 꿈과 끼를 살리는 박근혜정부의 교육정책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면도 있다. 이를 종합할 때 국제중 폐지에 대한 약한 입장이 아닌 강한 입장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