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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신병도 신약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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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며 스무살의 나이에 '균형이론'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계 경제학계에 제시했던 천재 수학자 존 내시.정신분열병으로 인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면서도 학문에 정진,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내시 박사는 정신분열병이 불치병이 아니며 극복이 가능함을 보여준 산증인이다.그가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21세기 현대의학은 정신분열병을 보다 쉽고 확실하게 치료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정신분열병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환자.가족.일반인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치료를 안 받거나 늦게 받는 데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김용식 교수는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듯 생각이나 감정, 혹은 행동(대인관계)에 이상이 있어 보이면 정신과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신분열증은 뇌의 이상으로 감정.인지.사회활동 등 다양한 정신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뇌 질환'이다. 충격을 받아 생기는 병도 아니고 잘못 키워서 걸리는 것도 아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홍경수 교수는 "정신분열의 원인은 아직 잘 모르지만 신경전달물질 이상 등 뇌의 전반적 기능 이상과 체질적인 요인이 관여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지능.양육 태도.가정 환경.교육.타고난 성격 등과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즉 화목한 가정이나 불화가 끊이지 않는 집안에서나, 교육을 받건 안받건 환자 발생률은 똑같다. 스트레스도 원인은 아니며 다만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따라서 다른 병처럼 정신분열병도 의심되면 정신과 의사의 상담, 심리검사.인지기능 검사 등을 통해 병을 조기 발견, 조기 치료해 뇌의 이상을 바로잡아 주는 게 최선책이다.

K군(21)의 예를 보자.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명문대에 입학,장학금을 받던 중 지난해 봄학기부터 공부에 집중이 안됐다.기분도 가라앉고 누군가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츰 학교생활은 불안해지고 매사에 예민해졌다. 마침내 그는 자기를 싫어하던 선배가 자신을 해코지하고 다닌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TV 드라마에서도 자기 욕을 얼핏얼핏 하고 지하철에 탄 사람들도 자신을 비난한다는 생각이 든다. 외출을 꺼리던 그는 마침내 부모 손에 이끌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는다.

석달간 치료를 받은 그는 "지금은 내가 말도 안되는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약을 먹기 전엔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정신분열병 증상은 크게 ▶환각.환청.망상 등 없는 일을 있다고 생각하는 양성(+)증상 ▶무감정한 반응,흥미나 의욕 상실,빈약한 언어 사용(내용이 없음) 등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기능이 없는 음성(-)증상 ▶횡설수설하는 와해되고 기이한 행동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김용식 교수는 "발병 후 치료가 1년 이상 지연되면 그보다 일찍 치료를 시작한 환자에 비해 2년 내 재발률이 3배 이상"이라며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치료 시기가 늦어질수록 뇌기능 손상이 진행돼 치료효과도 떨어지고 만성화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열병 치료의 기본은 뇌기능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장기간에 걸친 약물치료다.

이전의 치료약은 환자의 행동이 둔해지고 몸이 뻣뻣해지는 등 부작용으로 '치료를 받으면 바보가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또 양성 증상을 없애는 데는 좋은 효과를 봤지만 음성 증상은 여전히 남아 사회 복귀가 쉽지 않았다.

홍경수 교수는 "90년대 이후 개발된 리스페리돈.올란자핀과 클로자핀 등은 부작용이 없으며 음성 증상도 개선해 준다"고 들려준다. 이미 치료가 늦어져 기존의 약으로 반응이 없거나 재발을 잘 하는 난치성 정신분열병 환자도 신약치료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김교수는 "난치성 정신분열병도 평생 약을 먹으면서 관리만 잘 하면 증상개선과 함께 사회생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사진설명>
정신분열병도 일찍 발견해 약물치료를 받으면 치료가 가능하다. 사진은 정신분열병을 극복, 위대한 연구 업적을 이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쉬 박사의 일대기를 그린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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