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미, 2009년부터 중국 해킹" … 공수 바뀌는 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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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을 공격하던 미국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다. 에드워드 스노든(30)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미국의 대중국 해킹을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스노든은 13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실린 인터뷰에서 “미 국가안보국(NSA)이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과 홍콩의 수백 개 목표물을 컴퓨터 해킹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NSA의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 ‘프리즘(Prism)’의 존재를 폭로하고 지난달 20일 홍콩으로 피신했다. 스노든은 홍콩의 대학과 공무원, 기업인과 학생들이 주 해킹의 대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국 군사시설 등에 대한 해킹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NSA가 지금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6만1000건 이상의 해킹을 했다는 주장도 했다.

 해킹 방법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개별 컴퓨터를 해킹하지 않고 수십만 건의 온라인 통신 내용을 한꺼번에 엿볼 수 있는 기간통신망을 해킹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해킹망이 외부 네트워크와 내부 전산망을 연결하는 거대한 라우터 장비와 구조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스노든은 폭로 이유에 대해 “민간 정보망에 대해 도청·감시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위선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노든의 이 같은 폭로에 중국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의 해킹 공세로 수세에 몰렸던 중국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위숴(鄭宇碩) 홍콩시티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의 해킹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으로 미국은 중국의 해킹과 인권문제 등을 강하게 거론할 외교적 추동력을 급속히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중국은 이를 계기로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위해 미국을 압박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 향후 양국이 갈등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스노든의 신병 처리 문제도 양국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국 관계당국은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어떤 경우든 스노든은 국가기밀 누설 혐의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고, 미국은 곧 그의 신병 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거부하면 그의 신병 인도는 어렵고 이 경우 양국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신병 처리는 법적인 문제가 먼저지만 결국은 중국정부가 결정하게 돼 있다.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기 1년 전인 1996년 범죄인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정치적 망명자에 한에서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스노든은 현재 “홍콩의 사법체계가 날 보호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정치적 망명을 시사한 상태다.

 홍콩이 미국의 신병 인도 요청을 거부할 경우 미국은 홍콩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홍콩법원이 그의 신병 인도 결정을 내려도 홍콩 행정장관은 이를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다. 행정장관이 법원 결정을 받아들여도 이번에는 중국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에 의해 고도의 자치권을 갖고 있지만 범죄인 인도와 같은 외교와 국방은 중국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거부할 경우 스노든의 미국으로의 신병 인도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은 범죄인 인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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