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검은머리 차이콥스키' 천재 작곡가 정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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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추

‘검은머리 차이콥스키’ ‘카자흐스탄의 윤이상’으로 불리는 천재 작곡가 정추 선생이 13일 카자흐스탄에서 별세했다. 90세.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광주고보(현 광주일고)에 재학 중 조선어 사용 문제로 퇴학당한 뒤 46년 영화감독인 형 춘재씨를 따라 월북했다. 북한에서는 평양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형이 제작한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이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대 유학 중이던 58년 김일성 우상화를 비판하다 구 소련으로 망명했다. 차이콥스키 음대 졸업 때 낸 작품은 만점을 받았다. 음대 최초의 만점이었다. 차이콥스키의 ‘직계’ 4대 제자로 알려진 그의 작품 60여 곡은 카자흐스탄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

 고인은 무국적자로 17년, 소련 국민으로 16년, 이후 카자흐스탄 국민으로 살아왔지만 한 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작곡한 ‘조국 교향곡’은 궁상각치우 5음계만을 사용해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한 대표 작품이다. 고인의 꿈은 광주에서 마지막 음악 인생을 펼치는 것이었다. 지난해 6월 조카 정환호(85)씨와 정환초(80)씨를 만나 가족 상봉의 꿈을 이룬 고인은 곡성군 옥과면에 묻히고 싶다는 유훈을 남겼다. 유족은 부인 나탈리아 클리모츠킨나와 딸 릴리, 야나, 손녀 엘리나 등이 있다. 광주에서 설립된 ‘정추 영구 귀환 운동본부’는 조문단을 꾸려 카자흐스탄을 찾아 조문할 계획이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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