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려운 취재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작전지역이 넓고 산이 험하기 이를데 없어 군작전이 힘들 것은 물론, 취재도 무척 어렵다.
한번『상황이 있다』고 하면 평균 2백리를 달려야한다.
최소의 단위가 50리쯤. 50리를 가도 다시 10리나 20리는 걸어가야 하고 또 거기서 험준한 태백산맥의 봉우리를 타야한다.

<차길도 꼬불꼬불>
지난 7일 ○○부대 CP에서 ○○산에서 공비4명을 사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보자고 떠났다.
직선으로는 50리쯤 될까-하지만 찻길로 돌아가니 1백50리. 20년전에 나무꾼이 벌목을 실어내느라고 뚫은 길밖에 없고, 그나마 비에 씻겨 차의「데후」가 솟아난 돌에 부딪친다.
1시간에 40리 가기가 어려운 올림받잇길-. 4시간이나 고생해서 간신히 도착하자 다시 현장까지는 산을 2개나 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산등성이에「헬리콥터」가 l대 폭음을 내며 내려앉더니 사살한 공비의 시체를「로프」로 달아 올려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보도 못한 첫전과>
그러나 이렇게 뛰어다니는 사이에 행운도 있었다.
○○부대에서 첫전과로 2명의 공비를 사살, 8개의 배낭을 노획해 갖고 돌아오는 부대장 일행과 ○○역에서 정면으로 만났고 다행하게도 우리 취재차로 노획품을 실어나르기까지 했다.
○○부대장은 기쁜 표정으로「인터뷰」하자면서 노획품을 실어다 준데 대한 감사의 「코피」까지 대접해주었으나 뒤따라온 수사기관원들은 부대CP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것 조차 허가하려 하지 않았다.
특종감을 잡고도 이때처럼 허전한 때는 없었고 사진반원은 발을 굴렀다. 그러나 취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면○○리 불성골, 공비가 두번째로 나왔던 마을에서 문제의 외딴집을 사진 찍으려고 새벽에 골짜기를 올라가다 향군의 제지를 받았다.
향군들은『누굴 죽이려고 그러느냐』고 한사코 못가게 막았다. 아직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비군과 승강이>
그러나 사진을 꼭 찍어야겠다고 30분이나 사정사정했으나 막무가내-. 나중에는 호위해달라고 부탁하다못해 그래도 안된다기에『우리가 그대로 올라갈테니 죽으면 당신들 책임지쇼』하고 반협박(?)을 했다.
그때야 향군들은『당신들 복장이 꼭 공비 같아 오인받기쉽다』면서 20릿길을 4명이 호위해주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