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저구마을 아침 편지] 사랑을 하려거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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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해 늦가을, 일이 떠오릅니다. 거름을 주려고 뒷집 할머니가 쌓아놓은 소똥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 더미를 뒤집다가 엄지손가락만한 번데기를 발견했습니다. 함께 간 아들과 딸이 탄성을 지르며 손바닥 위의 번데기를 구경했지요. 어린이 동물백과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아들은 나방 종류라고 했습니다.

번데기가 꿈틀거리자 아이들이 서로 만지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아버지, 번데기에서 어떤 곤충이 나올까요? 우리 키워요. 네, 네?" 짚을 잘게 썰어 유리병에 넣은 다음 짚 사이에 번데기를 넣었습니다. 유리병은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놓았지요. 처음 얼마간은 번데기를 매일 들여다보았지만 점점 횟수가 줄더니 나중엔 아예 잊어 버린 듯했습니다.

그런데 입춘(2월 4일)이 지난 며칠 후, 아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박각시 나방이에요." 허물을 벗고 나온 건 눈이 크고 검어 토끼처럼 귀여운 나방이었습니다. 아들의 동물백과에는 줄홍색 박각시라고 적혀 있었지요. 아이들은 줄홍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날려 보냈습니다. 허물은 아이들의 보물상자 안에 간직하고요. 가슴이 미어질 듯한 아들의 나방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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