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수사하고도 … 검찰, 원세훈 사법처리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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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의혹 특별수사팀장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지난달 말 지휘계통을 밟아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긴급 보고를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사전구속영장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2주가 지나도록 검찰 수뇌부로부터 어떤 결정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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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검사가 9일 “10일 중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러나 10일 오전이 되자 “이르면 오늘 늦게 결론이 날 것”이라고 했다가 오후엔 “오늘은 힘들겠다”고 밝혔다. 막판 진통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각,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수사에 개입하지 말라”며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사 개입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이 ‘원세훈 딜레마’에 빠졌다. 공직선거법 공소시효(6개월) 만료를 9일 앞둔 10일 현재까지도 원 전 원장에게 적용할 법률과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지 못하면서다. 검찰은 그동안 각종 갈등설에 휩싸였다. 실제로 채 총장을 비롯한 대검 수뇌부와 황 장관의 시각 차에다 수사팀 내부의 이견까지 겹쳤다.

 원 전 원장 고발 당사자인 민주당이 이날부터 재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검찰을 다급하게 했다. 현행법상 정당(중앙당)이 공무원의 선거법 위반 행위를 고발한 사건에서 검찰이 공소시효 만료 10일 전까지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으면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보고 관할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낼 수 있다.

 검찰이 궁지에 몰리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건 법리적 판단이 간단치 않아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이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그가 취임 이후 국내 ‘종북좌파’ 척결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하고 인터넷상에서 이들에 대한 심리전 활동을 지시한 사실을 확인한 것을 근거로 해서다. 또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민주당 등 야당 인사 일부까지 종북좌파로 규정하고 각종 선거에서 이들의 당선을 막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활동을 벌인 정황도 확보했다. 원 전 원장이 이종명 3차장, 민병주 심리정보국장 등 지휘라인을 통해 수시로 보고를 받은 단서도 포착했다고 한다.

 문제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선거에 개입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인지, 직원들의 선거 개입 활동을 구체적으로 보고받은 것인지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한다. 만약 국정원 직원들이 원 전 원장의 지시를 과잉 해석한 것이라면 지휘 책임을 물을 수는 있어도 선거개입 혐의로 사법처리까지 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현직 검사 시절 ‘공안통’이었던 황 장관이 신중론을 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인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주변에서는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경우 지난 대선의 정당성을 놓고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결정이 늦어지자 수사팀은 보강 증거 찾기에 주력해 왔다. 수사팀은 지난 주말까지 국정원 직원 또는 국정원이 고용한 일반인 보조요원이 사용한 인터넷 아이디를 추가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1일 중으로 사법처리 방향과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50여 일 간의 수사는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여론은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이동현 기자

◆재정신청(裁定申請)=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고소·고발인이 직접 고등법원에 기소 여부를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제도다. 재정신청이 접수되면 공소시효는 정지되며 검찰은 30일 이내에 수사 기록을 법원에 보내야 한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바로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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