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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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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추석이 왔다. 중추의 추석 명절이 찾아온 것이다. 새해의 설날이 비록 사람의 마음을 희망에 부풀게 하지만 8월 한가위의 좋은 절후와 그 풍성한 생산에는 감히 대이지 못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대륙과 해양에 결쳐 온대지방에 자리한 지리를 얻어 사시의 곧고 반듯함이며 더욱 맑고 싸늘한 가을의 영기 속에 저리도 깊고 푸른 가을하늘은 이 겨레의 너무 큰 혜택으로 감사하여 마땅하다.
사람들이 곧잘 청자빛 하늘로 비유하지만 전통예술의 보옥인 고려의 청자야말로 기실 가을 하늘의 신비를 형상화한 선인의 오묘한 공예로 받아 들여야 한다.

<신라 길쌈내기 전승>
추석이 바로 중추의 망일이어서 하늘은 속모르게 깊고 바람은 그대로 금성이요 달은 마음껏 만월을 자랑한다.
신라 제3대 유리이사금 때라고 한다. 육부의 여자를 두 부에 갈라 7월16일부터 길쌈내기를 겨루어 8월보름날 그 공적의 다소로 진편은 맛있는 음식으로 이긴편에 사례하고 이어 노래와 춤으로 즐겼는데 이것을 일러 가위(가배)라하고 추석의 아름다운 관습은 여기에서 남상된 것이다.
여공에서 비롯된 여인들의 조촐한 항사가 그뒤 신곡으로 떡과 술을 빚고 산해진미와 백종 과물을 갖추어 조상에 제사하는 엄숙한 풍속으로 바뀐것은 순박한 인간의 지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추석절은 조상숭배의 경건한 제의가 그 줏대를 이루고 있어 가묘에서의 다례가 끝나면 이어 선영을찾아 성묘를 한다.
추석절에는 즐거운 놀이가 한창이다. 옛적에는 나라에서 활쏘기대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스러진지 오래고 오늘날 남아 전하는 것에 남자의 것으로는 씨름 거북놀이 농악 등을 들 수 있고, 여자의 것으로는 남도의 강강술래, 그리고 남녀공유의 것으로는 줄다리기를 들수 있겠다.
씨름이야 5월 단오에도 행하고 그 건장한 사나이들이 모이면 으례 힘을 겨루게 마련이지만 8월 한가위 허허한 대지위에 벌이는 육박의 열전은 보는 사람을 마냥 흥분케 한다.

<초원서 무예겨루고>
거북놀이는 추석날밤 수숫댓잎으로 거북의 모양을 만들어 그속에 젊은이가 들어가 거북의 작위로 집집을 도는 놀이인데 이는 거북을 인연하여 무병과 장수와 행복을 기구한 것으로 짐작된다.
농악은 상고 이 나라의 농사와 더불어 있어온 농민의 건강한 음악이다.
북·장구·징·꽹과리·소고 듬 거의 타악기들이요 가락을 능히 연주할 수 있는건 호적 정도이나, 호적이 없는 농악도 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악은 음악만이 아니요 무용과 연예까지 곁들인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고있다.
농악을 행하는 시기도 반드시 추석이 제철인 것은 아니지만 천고마비 10월의 초원은 이 놀이를 흥겹게 하기에 무척 어울린다.
아무래도 추석의 추석다운 놀이에는 남도의 강강술래를 들어야 옳다. 호남에도 남도 해안지방이 그 중심이 되고 있는데 중에도 해남과 진도에서 가장 성행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부녀자도 춤과 노래>
음력으로 8월 보름 달밤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크게 모여 강강술래의 노래와 춤으로 즐기는 남해의 화사한 민속이다. 춤은 손에 손을 잡아 원형을 이루고 목청 좋은 하나가 먼저 소리를 매기면 나머지 일동은 함께 후렴을 받는데 후렴귀가 곧 강강술래가 되고 있다.
달밝은 야반이요, 남자가 얼씬하지 못하는 부녀자만의 자유롭고 발랄한 무도회가 이 강강술래의 넓은 마당이다.
사실은 암만이라도 솔직하고 대담할 수 있어 1년의 울적과 고뇌 불평과 수심을 능히 달래고 발산한다. 가사는 정말 지방이요, 사람에 따라 대중이 없는게 특징이요, 강강술래의 후렴만을 소리 맞추면 되는 것이다.
춤도 처음은 알맞은 「중중모리」이다가 흥이 격하면 급조, 「자진굿거리」로 변한다.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할수 있는 놀이엔 줄다리기가 있다. 굵고 긴 줄을 동서 양대로 나누어 붙잡고 힘껏 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씩씩하고 즐거운 민속들이 차츰 잊혀지고, 또 하나 둘씩 잃어져가고 있다는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명절이니까 돌이키고 챙겨야겠다는 소극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우리가 이때 자각하고 반생하고 확고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멀지않아 더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우리가 잃은 뒤에 누가 있어 이것을 찾아줄 것인가.
시식으로 배부르고 다례와 성묘, 거기에 민속놀이의 관상이면 족한가.
조국의 근대화 또한 내것에 대한 알뜰한 관심과 이해, 뜨거운 애정없이 한치도 내디딜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무 남의 것에 눈이 팔리고 부러워 분별없이 뒤쫓다 보니 우리는 오늘날 나의 자랑도 몰라보는 부끄러운 겨레가 되고 맡았다.

<민속놀이 차츰 줄어>
남과 내가 다른 밧자가 무엇인가. 나를 추켜 내세울 것은 무엇이고 남에게서 애오라지 배울 바는 무엇인가.
가뭄과 홍수에 다시는 비탄하는 민족이 되어서 아니되고 올올이 알찬 근면과 무실위에 기필코 번형과 부강을 가져와야 한다.
올해도 북한의 동포와 이날을 즐기지 못하는 비분, 거기 2연이나 연이은 전남 한재민의 간고와 상심을 달랠길 없는 안타까움 속에 추석절은 왔다.
이 명절에 우리 모두 우리가 우리됨을 깊이 자각하고 조국의 통일과 영광 그리고 문화의 발전과 창조에 저마다 정신할 것을 다짐하자.
성경린<국립국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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