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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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금거래가 난무하고 매표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졌다고 하는 9·24보선을 계기로 우리 정계에서는 선거제도의 근본적 개혁논의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볼 때 선거가 대를 거듭할수록 부패·타락하여 흡사 금품에 의한 공직의 경매 입찰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슬프나마 부정키 어려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선거의 부패·타락상이 드러날 때마다 제도의 개혁논의가 벌어지는 것이지만 지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서 얻은 쓰라린 경험은 이제 이 개혁논의를 보다 구체적인 실천적 각도에서 검토케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할 것이다.
선거제도론으로 보면 전국구제나 중 선거구제, 소선거구제가 공히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다. 그 중 어떤 제도가 원칙상 절대로 낫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사회의 정치적 현실, 선거인의 정치의식 수준, 그리고 그 나라가 지향코자 하는 정당정치의 이상과 결부해서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의 가부가 결정될 수 있을 뿐이다. 6·8총선, 그리고 9·24보선에서의 부패·타락상은 여실히 드러났지만, 선거의 무패·타락은 반드시 제도의 결합에서만 유래한 것이 아니고 그 잘못은 제도를 그릇되게 운영한데 유래하는바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제도를 아무리 뜯어 고친다 하더라도 이를 그릇되게 운영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부정·부패·타락을 근절키는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도개혁심의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코자 한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는 전국구와 지역구를 아울러 채택하고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있다. 야당이 경치자금 조달을 빙자하여 전국구의석을 막대한 액수로 팔았다는 풍문은 그 하나의 무례로서 이처럼 전국구 의석이 국회의원직 매매의 대상이 된다고 하면, 이런 제도는 신속히 철폐함이 마땅할 것이다. 전국구를 설치해 놓은 소이는 지역구 선거제의 결함을 커버하면서 정당정치 확립에 박차를 가해보자는데 있는 것이고 그 필요성은 우리사회에서도 충분히 인정되는 바이다. 그러나 전국구가 국회의원직 매매의 수단으로 악용될 바에는 그 존속을 시인해야할 아무런 근거도 찾아낼 수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소선거구, 비교 다수, 단일 당선의 지역구 선거도 제도 자체로서는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닌데, 그 장점을 모두 죽이고 그 약점만을 최대한으로 악용하는 경향 때문에 부패·타락선거를 결과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6·8총선때부터 국회의원선거는 분명히 황금선거로 변질, 타락했는데 황금 선거의 기풍이 일소되지 않는 한,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중 선거구제를 채택한다하더라도 선거의 부정·부패·타락은 오십보백보의 차이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선거제도의 개혁논의에 외면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제도의 개혁을 즉흥적으로 논의하고 당리당락과 결부시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뿐이다. 민주국가 백년지대계를 위해 국회 내에 선거제도 개혁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널리 참작하여 가장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정치현실에 알맞은 제도를 채택토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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