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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칼럼] 북한 돈세탁을 조사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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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30면

중국의 주하이(珠海) 경제특구와 마카오를 연결하는 육로 검문소는 마치 시장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100여m를 사이에 두고 70~80m 폭으로 마주 선 양측 검문소에서 관리들은 바쁘게 여권을 검사하고 출입국 도장을 찍어준다. 두 지역은 육로와 바다 세 곳으로 이어져 있는데 바다 경계선도 폭 100m 안팎에 불과하다. 주하이에서 마카오로 나오면 홍콩까지 15분 간격으로 쾌속선이 운항된다. 주하이-마카오-홍콩은 요즘 하나의 경제권처럼 보인다.

 그곳을 오가는 인파 중에는 ‘어두운 장사’를 하는 북한인들이 존재한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조치를 피해 몇십만·몇백만 달러의 현금 보따리를 운반하는 것이다. 그들이 중국 대륙 사방으로 스며든다면 막을 길이 없다. 실제로 북한은 홍콩·광저우(廣州)·주하이에서 지하금융·차명계좌·차명회사 같은 수법으로 중국 금융당국의 제재를 교묘히 피해나가고 있다. <중앙sunday 6월 2일자 참조>

 그렇게 주하이를 중심으로 세탁된 돈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을 쏘고 남한을 위협하는 동력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하다. 핵무기나 미사일 모두 돈이 있어야 만든다. 돈이 없으면 김정은 체제는 그걸 못 만들고 대남 위협 수위도 낮아질 것이다. 돈세탁과 핵무기가 금세 연결되지 않는 걸까. 그래선지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면 우리 사회에선 “미사일을 더 사야 한다”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북한 돈을 틀어막자’라는 논의로 발전되지는 못한다. 위암 환자에게 소화제만 주는 꼴이라고나 할까.

 국정원이나 국방부 등 안보 관련 부처에도 이런 분위기가 스며 있는지 ‘북한의 돈세탁’은 큰 현안으로 떠오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안보 관련 부처가 북한이 돈세탁을 하는 현실을 막을 실력이나 의욕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왕년의 미국은 달랐다. 돈세탁 문제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장장 7년의 작전 끝에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철퇴를 내렸다. 이 작전은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 1999년 시작됐지만 자기 땅에서 벌어진 미국의 작전에 중국은 언급을 꺼렸다. 오히려 북한 때문에 자국 은행이 피해를 볼지 모르는 게 더 큰 걱정이었다는 게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북한을 담당한 데이비드 어셔의 말이다.

 최근 기자는 홍콩-주하이-광저우를 돌며 북한의 돈세탁 현장을 취재했다. 짧은 경험으로 볼 때 중국은 그런 교훈을 망각한 것 같다. 중국은 2005년엔 움찔했지만 요즘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물타기라도 하듯 자기 땅에선 뒷문을 터준다. 이 결의안은 ‘그 돈이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 있다고 의심할 근거’가 있을 경우 제재를 가하도록 회원국에 의무를 부과했지만 중국이 조선광선은행의 불법 행동을 조사했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국제사회가 아무리 강경 자세를 취한들 중국 대륙에 뚫린 구멍을 막지 않는 한 제재의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국 중국’의 처분만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미국에 부탁해야 할까. 그래선 안 된다. 기자가 취재한 북한의 돈세탁 거래 규모가 수십억 달러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건 한국의 안보 현안이 돼야 한다. 정부는 중국 대륙에서 북한이 행하는 돈세탁의 실상을 파악해 중국과 국제사회에 알리고 상응하는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 이런 주장이 오랜만에 싹트는 남북대화 국면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적어도 불편한 주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불·탈법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북한에 대해선 늘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남북대화가 북한의 불법을 묵인하는 걸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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