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속의 모계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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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는 언제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희로 바뀌었을까. 서울대사대 이광규교수는 예삼국가운대 신라가 가장 뒤늦게까지 모계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지난달초 일본 동경서 열린 국제인류학및 민족학대회서 강연을 통해 밝혔다.
그는 고대한국에서 부여옥저는 일찍부터 부계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나 한강이남의 삼한은 모계가 지배적이었다고 말한다.
이 두 사회는 각기 다른 문화체계를 갖고 있었는데 백제는 나라가 이룩되면서 부계사회가 덮쳐버려 그 사회는 이중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경우는 아주 보수적이다. 부계적 세력을 받아들이긴 백제와 마찬가지이지만 그 변화과정이 늦고 더디다. 소화시켜 받아들인 것이다. 고구려·백제가 부계로 왕위가 계승됐는데 비해 신라는 딸(사위)에게도 왕위를 잇게 해 그예가 9건이나 된다. 화낭·화백제도에는 여성이 참여한 흔적이 역연하다.
신라초기 임금의 칭호에 보이는「마립간」「이사금」역시 모계사회로의 변동을 엿보이는 한 요소이다. 심지어 사위가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나 왕후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아버지에도「갈문왕」이란 칭호를 주었는데 이는 여격에 대한 존중으로 풀이된다. 「아프리카」나「아메리카」토인의 풍습에 유사한 것이 있다.
특히 신라이전의 철저한 모계사회에선 부계사회에서 볼수없는 성년식이 있었다. 일정한 나이가 찬 소년들이 어른된 것을 고하는 의식으로 동남아및 대만 등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강 이남에는 지금도 북쪽에서 볼수없는 유습이 많다고 이교수는 소개한다.
가령 줄다리기에 있어 암줄과 수줄이 있는데 암놈쪽이 이겨야 그해에 풍년이 들고 수놈쪽이 이기면 흉한다는 풍습이다.
또 신화에 있어 알·우물·바가지등 유래의 방향이 대개 수평적이다. 모계사회의 경우 동남아일대는 숲·늪등도 신화가 유래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여성의 생식기를 의미한다.
이교수는 모계사회가 쌀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삼한은 중국 양자강 이남의 문화권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결론했다.
따라서 한반도 남쪽에 모계사회가 이루어진 것은 기원전1천년 내지 5백년께 바다건너 이동해 와서 일본구주 지방에까지 전파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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