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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도 괴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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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올해도 돌아왔다. 8일 일본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에서는 아이돌 그룹 ‘AKB48’의 인기멤버를 뽑는 다섯 번째 총선거가 열린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진 AKB48은 총인원 70여 명에 달하는 일본의 대형 걸그룹. 매년 5~6월 팬들의 투표로 진행되는 총선거에는 전국적인 관심이 모아진다.

올해는 AKB48 멤버 72명을 비롯해 자매그룹인 SKE48, NMB48 등의 멤버까지 총 246명이 입후보했고, 7일까지 150만여 명이 투표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 이어 일본의 민영방송 후지TV가 개표 전 과정을 4시간40분에 걸쳐 생중계한다. 외국 팬들을 위한 구글과 유튜브 중계도 계획돼 있다. 심지어 개표 전날에는 총선거의 결과를 예측하는 TV토론까지 열린다.

AKB48의 싱글앨범 ‘사요나라 크롤’ 재킷 사진.

 AKB48의 기발한 활동방식은 이른바 ‘아이돌계의 창조경제 모범사례’로 꼽힐 만하다. 투표권은 최근 발매된 AKB48의 싱글앨범 ‘사요나라 크롤’을 구입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지난달 22일 발매된 이 앨범은 일주일 만에 176만3000장이 팔려나가 역대 첫 주 음반 판매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일부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를 1위에 올리기 위해 수백 장씩 음반을 사들이기도 한다. 음반 판매 수익을 포함해 광고수익, 가이드북 판매 등을 포함하면 이 행사로 인한 경제효과만 100억 엔(약 11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투표 결과는 냉혹하다. 16위 안에 들어야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을 부를 수 있고 64위까지만 앨범 수록곡 녹음 및 방송, 광고 출연이 가능하다. 1위에 오른 멤버는 향후 1년간 각종 무대의 중심에 선다. 그런 만큼 멤버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각자 팬들과의 악수회는 물론 SNS나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선거를 앞두고 날카로워진 멤버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거나, 누구누구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어쩌면 우스꽝스러운 쇼 같은 이 선거에 자꾸 관심이 가는 건 이들의 모습에서 경쟁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고군분투가 읽혀서다. 더욱이 AKB48의 멤버들은 ‘반짝스타’라기보다는 수년간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작은 전용극장 무대에 서며 나름 ‘밑바닥’을 경험한 아이들이다. 높은 순위에 들지 못하면 화려한 카메라 앞을 떠나 다시 그 무대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성취와 좌절이 남 일 같지 않아, 순위에 처음 오른 멤버가 펑펑 울음을 터뜨릴 때 팬이 아닌 이들까지 함께 울게 된다. 올해 선거에서는 또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까.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