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한반도 정세 대전환의 기회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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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북관계가 해빙(解氷)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어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안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정상화를 위한 당국 간 회담이지만 필요하다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문제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은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라도 북한에서 당국 간의 남북대화 재개를 수용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화답했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장관급 회담을 12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 각종 도발적 언동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이 일시에 풀리면서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급선회하는 분위기다.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제안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밀담이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그동안 거부해온 당국 간 대화를 북한이 전격 수용한 것은 중국의 태도 변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은 지난달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베이징을 찾은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더구나 이달 말에는 한·중 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다. 더 이상 대화를 거부하고 버티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모처럼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남북한 모두 이 기회를 잘 살려 남북관계 경색을 풀어야 한다. 기싸움에서 누가 이겼느니 졌느니 하는 속 좁은 생각을 버리고 의연하고 성숙한 자세로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남측 중소기업인들과 수많은 북측 근로자들의 생계가 걸린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해서는 철저한 정경분리 원칙이 요구된다. 일방적으로 북한이 통신과 통행을 차단하고, 근로자를 철수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재발방지에 관한 북한 측의 확실한 보장은 개성공단 재가동의 전제조건이다. 이 문제가 잘 해결되면 이번 사태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구상하는 개성공단 국제화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도 재발방지는 필수적이다. 관광객의 신변안전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문제도 논의하자고 제안한 만큼 조속히 남북 적십자회담을 재개해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연로한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기본입장이다. 그런 만큼 6·15 공동선언과 7·4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갖자는 북측 제안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진전 상황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더라도 북핵 문제가 답보 상태에 있으면 관계 진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는 남북한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주목되는 것이 오늘과 내일 미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의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은 넥타이를 풀고, 1박2일간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북한 문제는 최우선 의제 중 하나로 올라가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여는 것은 미·중의 몫이다. 두 정상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중 공조 원칙에 합의하고, 6자회담 재개 등 대화 프로세스 재개에 뜻을 모은다면 협상을 통한 북핵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어제 현충일 추념사에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내미는 평화의 손길을 마주 잡고 남북한 공동발전의 길로 나아가자”고 북한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수용을 촉구했다. 북한은 당국 간 대화 제의로 내민 손을 잡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본격 시동을 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의 진전이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면 한반도 정세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놓쳐서는 안 될 한반도 정세 대전환의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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