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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소녀의 머리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학생들의 머리를 길러 그것을 수출해서 돈을 벌자는 「아이디어」가 나타났다. 기발하고 참신하고 의욕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다. 이로써 무한한 재원이 생겨난 셈이다. 소녀들의 머리칼은 5월의 목초처럼 자랄 것이니 소년 인구 1천만으로 잡으면 거대한 수출 실적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물질적·경제적으로 꾸려가야만 되게 되어있어도, 그러나 인생은 산술로써만 율 할 수 없는 영역을 지니고 있다. 머리칼을 베어 수지를 맞추는 사업의 가능을 부정할 수도 없고 비난할 대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외고 펴고 권장할 일은 아닌 것같다.
어떤 나라의 여성들의 호사를 돕기 위해서 이 나라 소녀의 머리칼을 베어 판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처참한 일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의 인권과 자유를 팔아 연명하지 않을 수 없는 생의 실상에 비춰 볼 때 가난한 나라의 소녀들이 머리칼을 베어 판다고 해서 대단할 건 없을 것 같지만 만부득이 한 처사와 대대적으로 선전 권유 할 처사와는 구별해야할 줄 믿는다. 수출진홍을 위한 단순한「아이디어」였다고 관계자는 말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면 자기의 마누라, 자기의 딸의 머리칼도 베어 팔 작정인가고 반문하고 싶다. 만일 자기의 일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한 발상이라면 그런 사람은 형편만 허락하면 인신매매도 예사로 할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2차대전후 일본에선 여체를 봉해서 수억불의 외화를 획득했다고 하는데 사고방식을 그런방향으로 발달시키고 만일 일반이 그것을 용인하게 되면 선진국 일본을 본떠서 대대적인 여체 매매를 서두르고 나설 냄새마저 풍기지 않는가. 팔아서 좋은 것이 있고 죽어드 팔 수 없는 것도 있다. 외고 펴고 팔아야하는 것도 있고 팔기는 팔되 은밀한 가운데 이루어져야하는 것도 있다.
동시에 해서 될 말이 있고 해선 안될 말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의 품위라고도 하고 최저한도의 도덕이라고도 한다. 소녀의 머리칼을 팔아서까지 수출실적을 올려야할 정도로 우리는 창피스러운 헝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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