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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침수대책 둘러싸고 서울시·서초구 샅바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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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가 강처럼 변했다. 이날 오전 강남·서초구에 시간당 최대 72㎜, 86㎜의 비가 내렸는데 어른 허리 높이만큼 물이 차 올랐다. 맨홀 뚜껑이 솟구쳐 오르고 도로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가 떠다니기도 했다. 주변 건물은 지하와 1층에 물이 들어와 정전이 됐다. 영업을 하지 못하는 점포가 속출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대도시 번화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는 탄식이 나왔다. 서초구 우면산에선 산사태가 발생했다. 26~27일 이틀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460㎜에 달했다. 이 비로 강남역 일대 상가·주택 1214가구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

 강남역 일대는 서초구가 1998년 상습침수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2001년에도 7764세대가 침수 피해를 본 적이 있다. 지난해 8월에도 두 시간가량 강남대로 일부가 물에 잠겼다. 강남역 주변 건물 지하에서 맥줏집을 하는 한 상인은 “여름철에 비만 왔다 하면 가게 입구에 차수판 설치하기 바쁘다”고 말했다.

 유동 인구가 특히 많은 강남역 지역은 역삼동·논현동 같은 주변 지역에 비해 해발고도가 17m 이상 낮다. 빗물이 모여드는 깔때기 모양의 지형인 것이다. 그런데 배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비가 많이 내리면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도 장마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강남역 침수 방지 대책을 놓고 서울시와 서초구가 서로 다른 해법을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다. 심각한 침수가 발생한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역에서부터 한강 방향으로 지하 50m 이상에 대심도 배수터널을 설치해 빗물을 한강 쪽으로 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퇴임하면서 이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신공법으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심도 터널 계획을 백지화했다.

 시는 대안으로 교대역과 서초구 반포천을 하수관으로 잇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진용 서울시 하천관리과장은 “강남역으로 흘러갈 물을 교대역에서 반포천으로 보내면 강남역의 하수관 용량에 여유가 생기지 않겠느냐”며 “교대역에서 어떤 경로로 반포천까지 하수관을 설치할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초구는 서울시의 방안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시간당 100㎜의 비가 오면 초당 282.9t의 빗물이 반포천으로 유입되는데, 반포천이 받아낼 수 있는 능력은 초당 210t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포천의 물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빗물이 유입되면 역류해 강남역 일대가 또다시 침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초구는 대심도 터널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5일 일본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방재·토목 담당 공무원들을 초청해 ‘재난방재 콘퍼런스’를 개최하며 여론전을 펴기도 했다. 스기나미구는 3000여 가구가 침수 피해를 보자 대심도 터널을 설치해 해결한 곳이다.

 서울시는 교대역~반포천 하수관 설치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전액 시비로 건설하기 때문에 서초구가 막을 방법은 없다. 이진용 과장은 “침수를 예방하기 위한 시 사업에 구가 반대한 전례가 없다”며 “사업 시작 전에 주민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현재 교대역~반포천 구간 하수관 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전문 업체에 의뢰해 놓은 상태다. 올 12월 결과가 나오면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내년에 착공할 방침이다. 2015년 완공이 목표다.

 지난달 서울시가 강남역 침수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서초구와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시 감사관은 서초구가 2005년 강남대로 하수관 공사를 계획했으면서도 같은 자리에 2007년 삼성전자 신사옥과 연결되는 지하통로를 승인해 줘 예정됐던 하수관 노선이 변경됐다고 지적했다. 감사관은 “변경된 하수관이 역경사 구조로 시공돼 이면도로의 하수관 부담이 가중됐다”며 하수관 변경 설치 허가 과정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서초구 관계자는 “심의를 요청하면서 하수관과 지하통로가 중첩된 부분을 간과한 측면이 있지만 서울시가 지하통로 심의를 통과시켜 줬는데 그때 이런 문제를 지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 계획대로 교대역~반포천 하수관이 설치된다 해도 앞으로 2년이 걸린다. 서초구가 원하는 대심도 터널 공사기간은 5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는 당장 올해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남역 인근 용허리공원에 공사 중인 1만5000t 규모의 빗물저류조를 활용하기로 했다. 올 연말 완공 예정이지만 터파기·시멘트 바닥 작업을 이달에 끝내고 임시 운영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 저류조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류조 기본설계를 맡은 H엔지니어링 관계자는 “1시간에 77.1㎜, 2시간 동안 111㎜, 3시간 동안 138㎜까지만 조절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더 많은 비가 내리면 침수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강남역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강모(49)씨는 “2011년에 1층인 우리 가게도 물이 차올라 냉장고·에어컨 전기가 모두 나갔었다”며 “어떤 방안이든 의견을 모아 하루빨리 시행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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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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