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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줄자로 재는 외식업 규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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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새 점포 개설 신청이 들어오면, 인근에 간이과세자 중 메뉴가 50% 이상 겹치는 가게로부터 도보로 150m 이상을 떨어졌는지 줄자로 재야 할 판입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외식업 규제 가이드라인 발효(다음 달 1일)를 앞두고 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그나마 간이과세자(연 매출액 4800만원 이하)와 150m 떨어진 곳에는 점포라도 낼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당장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역세권 100m 이내에서만 출점이 가능해진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백방으로 가게를 낼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신규 브랜드는 출점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규제가 워낙 세밀해 산 넘어 산이다. 한 중견 외식업체 사장은 최근 중식 주점을 열려고 서울 한남동에 가게를 물색하고 가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접었다. 역세권에서 200m 이상 떨어져 점포를 낼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국내에서 볼 수 없던 고량주들도 들여오고 안주도 중국 사천식 등으로 메뉴 개발까지 다 해놨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지역에 소규모로 시작해야 하는데, 점포를 낼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다.

 대기업은 2만㎡, 중견기업은 1만㎡ 이상 복합몰에만 점포를 내라는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 외식업체 관계자는 “등기부등본을 떼어 확인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낼 수 있는 장소 자체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신사역 네거리에서 영동대교에 이르는 도산대로변엔 연면적 2만㎡ 이상인 건물이 하나도 없다. 교보사거리에서 양재역 사거리까지도 2만㎡가 넘는 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 지방에도 똑같이 규제가 적용돼 점포를 내려면 여의도 IFC몰,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같은 복합 쇼핑몰이 생겨야 한다.

 사실 상권의 특성이 복잡하고, 갖가지 사업 형태가 뒤섞인 외식 산업이 동반위 규제대상에 들어간 것 자체가 정치적 산물이다. 외식업중앙회가 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느라 동반위에 중소기업 적합 업종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빵집 논란, 갑을 논란 등이 벌어지면서 가장 강한 규제로 일단락이 났다. 이런 규제로 인한 고용감축은 이미 현실화했다. 까페베네 등이 인력 감축에 나섰고 애슐리·CJ푸드빌 등도 매장 신규 인력 채용을 못하게 됐다고 말한다.

  무리수가 따르는 외식업 규제지만 어쨌거나 현실이 됐다. “규제 탓에 맛없고 비싼 음식만 먹게 됐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을 듣지 않으려면 이제는 골목상권 외식업자들이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밥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속이 꽉 찬 김밥을 말아 하루 5000줄을 파는 ‘강소상인’ 방배동 해남원조김밥 정기웅 사장의 성공 비결을 되새겨볼 때다.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