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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예산 갈등, 주민 반발 … 행복주택 불협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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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행복주택 20만호’ 건설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사업비를 깎으면서 주관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건설 중단이 우려된다”고 맞서고 있어서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주택공약이 자칫 예산 확보라는 난관에 부닥치면서 졸속 공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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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기재부 등에 따르면 기재부와 국토부가 행복주택 건설에 필요한 사업비로 책정한 예산 격차가 1조3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20만호를 공급하려면 10조7700억원이 필요하다고 예산을 요구하고 있으나 기재부는 예산을 아껴 쓰라는 이유에서 이를 9조3900억원으로 깎았다. 자금조달 방법과 관련해서도 국토부는 4조1300억원 규모의 국고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기재부는 국민주택기금을 통한 융자를 통해 조달하라는 입장이다.

 이렇게 예산 규모와 조달 방법을 둘러싸고 기재부와 국토부가 씨름을 벌이는 것은 기재부의 ‘예산 절감’과 국토부의 ‘현실 중시’ 입장이 충돌하는 데서 비롯된다. 양측의 시각차는 행복주택의 토지매입 비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데서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정부 공공주택 정책의 간판인 행복주택은 쓰지 못하던 철도부지를 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기재부는 철도부지를 활용하는 만큼 땅값이 들지 않아 국고 지원도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135조원에 달하는 복지공약 재원 마련을 위해 다른 부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전처럼 정부 사업이라고 해서 국고를 그냥 가져다 쓰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업을 시행하는 LH공사가 국민주택기금 융자를 통해 건설비를 조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주택기금은 국민주택채권과 장기주택마련저축 잔액이 쌓이면서 융자 여력이 충분하고 2%대의 장기저리로 빌려주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토부의 생각은 다르다. 국고 지원 없이는 행복주택 가운데 영구임대·국민임대 형태의 공공주택 건설은 거의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명박정부의 보금자리주택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수용해 지었기 때문에 땅값이 많이 들지 않았는데도 재정지원 비율이 최고 85%에 달했다. 그러나 보금자리주택에서 행복주택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인데 땅값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정을 지원하지 않으면 예산 부족으로 공공주택 건설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예산을 많이 받기 위한 ‘엄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주택은 철도 위에 덮개(데크)를 씌워야 하는데, 이 비용이 토지를 수용하는 것 못지않다는 게 국토부의 주장이다. 국토부 계산으로는 재정지원이 없으면 공공주택 건설 규모는 기존 5만호에서 9000호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7일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기재부가) 135조원의 재원 마련을 우선적으로 하면서도 일률적으로 (예산을 삭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우려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기재부의 방침대로라면 내년부터 기존 물량과 행복주택 공급을 포함해 연 11만호의 임대주택 공급 달성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편의시설 없이 집만 잔뜩 지을 수밖에 없어 행복주택의 주거환경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토부는 현재 주민센터·파출소·보건소는 물론이고 소형 체육공원·공연장·자전거도로 등을 건설해 친환경주거복합타운으로 행복주택 단지를 짓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기존 보금자리주택은 강남·서초지구를 제외하곤 대부분 도심에서 15~20㎞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도시 서민들에게 편의성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고려했다.

 행복주택이 들어서는 지역의 주민 반발도 넘어서야 한다. 국토부가 올해 1만호를 목표로 선정한 7개 시범지역에 서울 목동·잠실·가락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발표되자 이 지역 주민들은 즉각 반발하고 있다.

임대주택이 주변에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관할 구청도 저소득층 유입에 따른 사회복지비 증가 등을 우려해 행복주택 지구로 선정되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서라도 인기 있는 주택으로 건설해 기피지역화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행복주택이 성공하려면 대중교통이 편리한 철도부지와 도심 유휴부지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소형 임대주택인 만큼 편의성을 높여야 도심재생 기능도 하면서 이용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주택은 올해 1만 호 시범 건설에 이어 내년부터 매년 4만6000~4만8000호가 공급된다. 공급물량의 60%는 신혼부부·사회초년생·대학생, 20%는 장애인·독거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배정된다. 나머지 20%는 일반 무주택 가구에 공급된다. 국토부는 오는 10월께 2차 행복주택 후보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지보다 물량이 더 많고, 서울 강동 고덕차량기지, 수서차량기지 등 강남권 철도역사 포함이 검토되고 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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