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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대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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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류의 운명이 학문의 힘에 좌우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크나큰 번영을가져온것도학문이요, 인류의 파멸을 초극할 수 있는 예지도 학문에 기대할수밖에없다. 세계대학총장회의에대한 우리의 관심이, 각별한 것은 이때문이다. 대학은 산업사회의 「파일러트」미래를 창조하는 주역이다. 「이탈리아」의 「보로니아」대학부터 계산하면 대학의 역사는 8백여년이되고, 더거슬러올라가 「모로코」에있는 「카루인」대학부터따진다면 그역사는 1천1백년이나된다.

<진리·이성·자신추구>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학문연구의 추진체로서의 대학이된 것은 근세의 일이다. 교회, 국가와 더불어 중세의 3대세력의 하나로 발전해온 대학은 과학발전에 이바지하기도했지만 이를해치는일도 적지않았다. 「르네상스」이래로 과학을 발전시켜온 것은 새로이 대두한 시민계급전체였지 결코 대학이 아니었다. 대학이 진리탐구와 학문의 창조적연구를 그이념으로서 뚜렷하게 확립한 것은 1800년대이후의 일이다. 1810년에 「폰·훔볼트」는 「베를린」대학의 이념을 『진리에의 용기, 이성에의 신념, 자기에대한 신뢰』라고 천명했다. 대학의 전통은 이끼가 끼여있으나 그것이 실질적인 알맹이를가지게된 것은 19세기 「베를린」대학부터라고봐야한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대학은 19세기「유럽」문학의 후광과 그이전의 전설과 신화가 한데 뒤얽힌 상태에 있다고 할수있다.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학회를 연구하고 학회를두어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17세기당시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학문이 꽃피어었던 곳은 영국의 대학이아니라 「베를린」 「파리」 「페테르부르크」와 궁정이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가 전통에 빛나지만 이들은 학료제도(Collegium)를 기본으로하고 여기서의 공동생활을통하여 신사를 양성하자는 것이 그교육목표였다.

<비중커진 기술교육>
경제학자「아담·스미드」가 학문의 연구는 제쳐놓고 사교만 일삼는 「옥스퍼드」의 학풍에 견뎌나지못하고 「글라스고」대학으로 도망쳤다는 것은 유명한얘기다.
영국의 대학들이 그전통적인 비전문적이고 비직업적인 일반교양주의를 수정하고 전문적인 과학연구를 하기시작한 것은 19세기에와서 독일대학의 성공에 자극된 결과이다.
독일대학의 특징은 교수의 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학부제를 채택하고있는 것이다. 18세기에이르러 「볼프」 「칸트」같은 철학자들이나와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키고 학문하는 자유를 확립한 것이 대학개혁의 발단이됐는데 철학을 중심으로 학문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독일대학의 이념은 이상주의적인 인간학을 지향하는 면이 강하다.
물리학자「하이젠버그」가 수학이나 기타특수한 지식보다는 「호머」나 「소포클레스」의시를 더중시했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는 얘기는 독일「아카데미즘」의 과거의 영광과 오늘의 「딜레머」를 암시해준다. 미국은 교양위주의 대학을 발전시켜왔고 1880년께부터독일대학을본떠서 전문적인 학술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원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미국의 독자적인 입장에서 농업과 공업교육을 주로하는 주립대학을 세웠다.
미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주로 자본주의의 발전에 수반한 전문기술자의 수요에 응하는 전문기술교육의 면이 강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어떠한가. 우리의 대학은 아직도 지표를 찾지못하고 방황하고있는 것이 숨김없는 사실이다.

<새지표 아쉬운 한국>
모든대학은 그것이 존립해있는 기반으로서의 사회적인 조건에 합치하고 현실적인 요청에응할수있어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남의 것을 빌어서 흉내내는 과도기가 하루속히 극복되지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것을 수행하려면 대학인의 비상한 창의력과 노력 그리고큰「비전」있는 정책이 결합되어야할 것이다. 속이텅빈 건물이나세우고 영리나 추구하는 대학이 난립하고 있는 현실이 극복되지앓는한 대학의 질적향상을 기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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