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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베'에 돌을 던지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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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는 깨진 유리창이다. 깨지고 금 간 유리창을 그대로 놔두었더니, 다른 유리창도 깨지고 건물은 일탈의 소굴이 됐다. 처음에는 유리창 깨기를 사소한 ‘놀이’로 여겼다. 금기를 깨는 젊은 세대의 치기 말이다.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다. 좌절한 세대는 자신을 파괴했다. 주변에는 더 좌절한 그들이 널려 있었다. 이게 상승 작용이 됐다. 그들은 해방구를 찾았다. 그곳에선 반사회적, 반인륜적 탈선도 거리낌 없었다. 욕설이 난무하고, 여성 비하는 끊이지 않았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인종차별은 일상이 됐다. 위태위태하던 그들의 행보는 결국 극단적 지역주의 조장과 역사 왜곡으로 정점을 찍었다. 호남 사람들을 ‘홍어’라 조롱하고,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관을 ‘택배 포장된 홍어’로 부르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혔다.

 이쯤 되면 일부 일베 회원들의 행태를 보수라고 하기도 어렵다. 보수는 원칙과 철학이 분명해야 한다. 일베에서 이런 가치관을 찾기는 힘들다. 그저 휩쓸리고 방황하는 영혼쯤으로 봐야 할 듯하다. 그래서 나오는 질문이 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랴?’

 이들은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는 듯하다.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고 외치는 듯하다. 한 언론과 인터뷰한 일베 회원의 말은 이렇다. “친구가 일베를 가르쳐주었다. 여자들 비난하고, 이상한 글 쓰고, 재미있다. 욕도 마음껏 할 수 있다. 난 여자가 싫다.” 그는 자신을 22세, 취업 준비생이라고 했다. 말을 이어 갔다. “공부 잘하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싫다. 그런데 속하지 못하니까 불만이 있다. 근데 일베 하다 보면 속이 풀린다.”

 이 말이 일베 전체 회원의 속내를 대변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의 유전자 구조를 살필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일베는 절망하고 좌절한 세대가 모여 배설하고 위안을 얻는 곳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에서 루저(loser)로 전락한 청년들은 어쩌면 구원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들의 막말은 ‘날 봐달라. 우리에게 희망을 달라’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임은 기성 세대의 몫이다. 사회는 배려를 몰랐다. 낙오자를 보살피지 않았다. 아예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그들에게 자포자기 말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이런 그들을 명예훼손이나 허위 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처벌한다고 ‘막장’이 사라질까. 민주당이 주장하듯 일베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반사회적 일탈이 없어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구석에 몰린 그들은 더 극단적인 말과 행동으로 무장할 게 뻔하다. 일베 사이트 정문에 대못질해 봤자 곧바로 제2, 제3의 일베가 창궐할 것도 분명하다. 그들의 등에 ‘반(反)사회, 반(反)인륜’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들 탈선은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황폐해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집단 지성의 힘이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의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싶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