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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71) 87년 6·10 민주항쟁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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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7년 6월 13일 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안에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학생뿐 아니라 넥타이를 맨 직장인의 모습도 보인다.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을 공안당국이 은폐하려고 한 사실과 이한열군이 최루탄 파편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일이 알려지면서 6·10 민주항쟁이 시작됐다. [중앙포토]

1987년 5월 26일 잠을 자고 있는데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잠이 덜 깬 채로 수화기를 들었다. 청와대 부속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대통령께서 통화를 원하셔서 전화 드렸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 전두환 대통령과 전화가 연결됐다.

 “고 의원이 내무부 장관을 맡아줘야겠어요.”

 내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87년 1월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이 터졌다. 사건 은폐 의혹까지 번지면서 민심은 분노했고 정국은 요동을 쳤다. 치안을 담당하는 내무부는 수세에 몰렸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했다. 내무부는 내가 처음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고향 같은 부처다. 어려운 때라고 해서 내무부 장관직을 피할 순 없었다.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수락하고 전화를 끊었다. 15분쯤 지났을까. 청와대 부속실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저기…, 이한기 전 감사원장의 전화번호 아십니까.”

 “아, 저도 모르는데요. 사무실에 가면 연락처가 있겠지만 지금은 집이라 없습니다. 연감 인명록에 나온 주소와 전화번호가 대개 맞습니다. 급하시면 거기 나온 번호로 연락해 보시죠.”

 ‘무슨 일로 이 전 원장의 연락처를 나한테 묻나’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버지가 깰 때까지 2시간 정도 기다렸다. 그 사이 담배를 한 갑이나 피웠다. 새벽 6시반쯤 아버지가 일어나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2층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말을 꺼냈다.

 “새벽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무부 장관을 맡아 달라고 해서 수락했습니다.”

 기뻐하는 내색은 없었다. 아버지는 대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왜 호구(虎口·호랑이 입)에 들어가려고 하느냐.”

 “나라가 어려울 때 부름을 받았는데, 어떻게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오전 전 대통령이 개각을 발표했다. 총리·부총리에 장관 셋이 교체되는 비교적 큰 폭의 개각이었다. 새벽 청와대 부속실에서 왜 이한기 전 원장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는지 알게 됐다. 나는 내무부 장관에, 이 전 원장은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됐다.

 시간이 갈수록 민심은 더욱 악화됐다.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을 규탄하고 호헌(護憲·현행 헌법을 유지함)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6·10 민주항쟁의 시작이었다. 그날 늦은 저녁 조종석 시경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긴급한 내용이라며 보고했다.

 “시위대 1000여 명이 명동성당에 집결했습니다.”

 “다른 시위대는 이미 해산한 거 아닙니까. 그대로 놔두세요. 괜히 해결한다고 경찰이 포위했다가는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5분 후 다시 조 국장이 전화 했다.

 “이미 안전기획부에서 현장 조정을 했고 명동성당을 포위했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전화기에 대고 버럭 소리를 쳤다. 안기부에 항의를 했지만 소용 없었다. 걱정했던 대로 포위된 명동성당은 태풍의 눈이 됐다.

 6월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연락이 왔다. 저녁 7시 공안장관회의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명동성당 안의 시위대와 경찰이 사흘째 대치하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고 했다. 청와대 안가에서 회의가 열렸다. 내무부 장관인 나를 포함해 외무·법무 등 관계부처 장관들과 박영수 대통령 비서실장, 안현태 경호실장, 안무혁 안기부장,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 청와대 관련 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안현태 경호실장이 회의를 주재하다시피 했다. “24시간 내에 명동성당에서 시위대를 전부 내보내지 않으면 전투경찰이 진입해 해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에게 이렇게 통보하려고 합니다.”

 전 대통령의 지침인 듯했다.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시달하는 쪽으로 회의 분위기가 흘러갔다. 안무혁 안기부장이 참석자들에게 “돌아가며 쭉 의견을 얘기해 보라”고 했다. 내 차례가 왔다.

 “전 제일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나에게 질문이 떨어졌다.

 “경찰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계획을 얘기해 보세요.”

 질문한 사람이 안현태 경호실장이었는지 다른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전투경찰을 어떻게 투입할지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말해 보라는 의미였다. 내 대답은 분명했다.

 “전 반대합니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사건] 6·10 민주항쟁

1987년 6월 전국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학생은 물론 ‘넥타이 부대’로 불린 직장인과 상인 등도 시위에 동참했다. 이들은 전두환 정권의 장기 집권을 반대하며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다. 간선제였던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는 내용의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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