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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의 탐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상아탑」이라는 말이 제일먼저 사용되기는 구약성서의「솔로몬」아가에서였다. 여기서는 여자의 목덜미의 아름다움을 상아에 비유하고있었다. 대영사전을 보면「상아탑」이 오늘과 같은 뜻을 갖게된것은 19세기의「프랑스」문학자「생트·비브」때부터라고되어있다.
학자란 아닌게 아니라 상아처럼 희맑은 소녀의 목과 갈이 세속적인 더러움을 모르고 어디까지나 진리의 탐구에만 몰두하고있는 사람이라고 보고있다. 또 그렇게 보고싶어들 한다. 그런 학자들이 연구를 하지 않고있다는것이 근래에 이르러 여기 저기서 지적되고 있다.
가령 작년 한햇동안 서울대학교의 7백48명에 이르는 전임강사이상의 교수들이 내놓은 연구실적은 저서51권, 논문7백99편 정도라니까 교수당 1년연구업적이 논문한편 글밖에 안된다. 더우기 실제로는 가장 활발한 연구활동을 할것으로 기대되고있는 전임·조교수급의 소장학자들의 저작이 불과 10권이라고 한다.
이것은 그래도 다른 사립대학에 비겨 비교적 연구비지급이 풍성하고 연구교수제까지 실시되고있는 국립서울대학교의 경우다. 다른 사립대학들까지도 견주어 본다면 얼마나 상아탑속이 불모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는 으례 지적되고있는 연구시설및 연구비부족 이외에도 법정정원의 31.5%밖에 안된다는 엄청난 교수부족으로 인하여 과다근무하게 되거나 생활을 위하여 부업을 갖게되는때문도있다. 그러나 이런것 만으로 상아탑의 불모가 전부 설명될수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어느 심리학자에 의하면 창조적 충동이란 균형감이나 안정감의 결핍에 따르는 일종의 도병과 판련되어있다고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학자들처럼 창조적 충동을 강렬하게 느끼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연구업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먼지낀 노상에서 그 아까운 정력이 모두 소모되는 까닭이 어디있는지 누구나 차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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