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초연 참담히 실패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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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와 파파게나가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조르다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안드레아와 마델레이느가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트가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와 투란도트가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등 주옥 같은 사랑의 이중창들이 사랑 받고 있지만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핀커톤과 초초상이 부르는 이중창 ‘저녁은 다가오고’는 무려 16분에 달하는 긴 곡으로 아름답고 세련된 곡이다. 그토록 긴 사랑의 노래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맺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은 결국 부질없는 노래를 16분씩이나 부르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프랑스 해군장교 피에르 로티는 동양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당시 일본이 개항했던 국제항구도시 나카사키의 프랑스 해군장교와 현지 게이샤의 계약결혼을 소재로 ‘국화부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미국의 존 루터 롱은 자신의 여동생이 선교사의 부인으로 일본에 머물며 한 게이샤가 외국인과의 사랑에 실패해 음독 자살한 사건을 전해 듣고 두 이야기를 엮어서 ‘나비부인’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한 미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연극이 대성공을 거두며 런던에서 공연되는 기간에 때마침 자신의 오페라 ‘토스카’ 공연차 런던에 왔던 푸치니는 영어로 된 대사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도 크게 감동해 벨라스코와 오페라화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오페라로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확신했던 푸치니는 벨라스코와의 저작권 협상이 지체되자 자신과 손발이 잘 맞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대본가들에게 의뢰해 급하게 대본을 만들었다.

1904년 2월 마침내 라 스칼라 극장에 올려진 나비부인의 초연은 ‘라 보엠의 아류’라 혹평하는 반대파들의 공세 속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동양적 무대와 함께 무려 100분이 넘었던 제2막 때문이었는데 푸치니는 성공을 거둔 후에도 라 스칼라 극장에서의 공연을 꺼렸다.

당대에 푸치니 오페라 지휘를 도맡았던 토스카니니의 충고로 대본을 대폭 수정해 초연으로부터 3개월 후 밀라노 인근의 작은 도시 브레시아의 그란데 극장에 올려진 나비부인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2년 만에 나비부인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90여 년간 무려 500회 이상이나 무대에 올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3월 김자경 오페라단에 의해 시민회관에서 초연됐으니 푸치니의 초연 이래 66년만의 일이다. 일본을 무대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선입견적 거부감이 많아 그다지 자주 공연되지는 않는데 작품성만으로 본다면 푸치니의 다른 어떤 오페라 못지 않게 완성도 높은 역작이라 하겠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5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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