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민주정치 교육기관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3개 선거구의 평균투표율은 41.3%였다. 2000년 이후 같은 유형의 선거 중 셋째로 투표율이 높았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통합선거인명부를 활용해 유권자가 별도의 신고 없이 어느 투표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를 도입한 것이 투표율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1월 선관위는 창설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일은 제2회 유권자의 날이었다. 이제 선거 과정과 다원성에서 한국은 정치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공직선거는 주기적으로 실시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무대가 됐다. 선거자금 조달과 지출의 투명성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확보됐다.

 선관위 역할의 정립과 변화 역시 괄목할 만하다. 선관위는 제5차 헌법 개정을 통해 1963년 1월 21일 창설됐다. 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으로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행정부로부터 독립한 중립적 헌법기관으로 설립됐다. 민주화 이전 선관위는 대선·총선·국민투표를 관리했지만 이제는 지방선거·교육감선거·주민투표는 물론 정당의 경선, 국립대 총장 선거, 조합장 선거, 중소기업 중앙회와 농·수협 중앙회 선거, 새마을금고나 공동주택 임원선거 등도 위탁받아 관리한다.

 선관위는 89년 4월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를 계기로 점차 중립적 위상을 확립하고 공명선거를 구현하게 됐다. 당시 선관위는 단속반을 운영해 불법·탈법 선거운동을 제지·적발하고 후보자와 선거사무장 전원을 고발 조치했다. 94년에 대선·총선·지방선거를 통합하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함과 동시에 선거비용 규제와 선거사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공직선거법이 제정됐다. 2004년에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병폐를 시정하기 위해 정당·선거·정치자금 관련 법률이 개정됐다. 선관위는 선진 선거관리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2002년 투표지 분류기를 도입해 개표 업무의 정확성·신속성·효율성을 높였다. 2012년 총선과 대선부터는 재외국민의 참정권 행사를 위해 재외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직접 발급하고 있다.

 한국 선관위의 엄정한 선거 관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돼 외국의 선거 관계자가 연수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정치 발전의 모델로 등장하면서 올해 10월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창립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선거 한류’의 확산은 시간문제다.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시민의 높은 정치적 관심, 활발한 참여, 체제에 대한 강한 지지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문화의 토양도 필요하다. 2012년 1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매년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정했다. 48년 그날에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최초의 민주적 선거가 실시됐다. 이런 배경에서 제정된 유권자의 날을 기념함으로써 시민의 투표 참여를 진작하고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한국 민주정치의 부단한 전진을 위해서 향후 선관위가 할 일이 적지 않다.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과 후보자의 선거활동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거를 관리해야 한다. 정책선거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시민단체·언론과 연계해 펼쳐온 매니페스토 캠페인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건전한 정당 발전을 지원하고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선거제도를 정비하는 방안을 세심하게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선관위는 민주시민을 육성하고 남북통일 후의 의식 통합에 기여하는 정치교육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독일의 정치교육원에 준하는 민주시민 정치교육 전문기관을 선관위 산하에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박 찬 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