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원자력협정 지피지기했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9일 미국 워싱턴DC에서의 일이다. 비는 오락가락했고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관련 ‘카더라’ 주장이 속속 전해져서였다. 한국여기자협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국 원자력협회(NEI) 사람들과 만났지만 생각은 윤씨 사건을 맴돌았다.

 “미국이 원전 수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비확산….” 심드렁하다 정신을 차렸다. 곧 나온 ‘원자력협정’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얼마 전 양국 정부가 2년 연장키로 한 협정 말이다. “연장안은 미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농축과 재처리에 대해선 이번엔 결론이 나지 않았다. NEI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우리는 갱신만을 원했다.”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순간 궁금해 물었다. “개인적으론 어떤가.” 1980년대 초반 고리 원전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장인이 한국전 참전용사였다는 업계 고위 인사가 익명을 전제로 ‘친구로서’ 말한다며 이같이 답했다.

 “농축과 재처리는 좋은 게 아니다. 한국 정부가 얘기하듯 재처리가 사용 후 핵연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술자적 시각으론 이해한다. 그러나 처리를 통해 더 많은 플루토늄이 한반도에 생기는 게 좋지 않다. 북한 핵이 있는데 남한에도 플루토늄이 생긴다면 걱정이다. 좋은 생각이 아니다. 원전 수출과 관련한 재처리나 저농축에 대한 한전의 요구를 이해한다.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다.”

 그는 그러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I do get really worried about that)”고 했다.

 국내에서 듣던 얘기와 달랐다. 적어도 미국 산업계는 우리 입장을 이해할 거라고들 했다. 산업계를 통해 미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그의 품새는 단호했다. 공통 의견으로 여겨질 만큼 말이다. 산업계도 우군(友軍)이 아니었던 게다. 그 전날 양국 정상은 원자력협정을 선진적·호혜적으로 개정키로 했다고 발표했었다. 방향은 그 방향일지 몰라도 목표 지점은 크게 다르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거리 좁히기는 우리 몫이다. 복기해보면 우리의 협상 논거가 강력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라이브 이후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곧 포화되니 재처리를 통해 줄여야 한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엔 재처리를 허용하면서 왜 우린 안 되느냐고도 했다.

 일본을 두곤 미국도 “시장이 없는데도 재처리를 통해 수t의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다”(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센터)고 긴장하고 있다. “우리도 해야겠다?” 미국이 쉽사리 수용키 어려운 논리였다.

 사용 후 핵연료 접근법도 허술했다. 박 대통령이 최근 언론사 정치부장단 오찬에서 언급한 포화 시점은 2016년-정부는 2012년 그 시기를 2024년으로 늦췄다-부터다. 우리가 재처리 기술로 ‘올인’하다시피 하는 파이로프로세싱은 상업화된 기술이 아니다. 그게 되려면, 성공한다는 전제에서 몇십 년 더 있어야 한다. 파이로프로세싱한 연료를 땔 원자로(소듐 냉각 고속로)도 개발돼야 하는데, 또한 성공한다는 전제에서 역시 몇십 년이다.

 간단한 산수다. 대통령의 말대로면 저장시설은 3년 후부터 포화된다. 재처리는 두 기술 모두 성공한다는 아주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30년 후에나 가능하다. 그 사이가 27년이다. 혹여 두 기술 중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공백’은 길어질 터다. 사용 후 핵연료는 계속 나올 텐데 ‘무대책’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우리끼리 저장시설 확충으로 푸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불확실한 옵션 중 하나일 뿐이다. 정작 우리가 할 일(저장시설)은 안 하고 재처리가 유일한 미래인 양 몰고가니 미국이 갸웃한 거다. 국내 상당수 전문가도 “대통령에게 누가 잘못 입력한 게 아니냐”고 의아해하고 말이다.

 다음달부터 다시 협상이다. 이번엔 지피지기할까.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