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모도바르 새 영화 '그녀와 이야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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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칸 영화제에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예상과 달리 '로제타'에게 황금종려상을 넘기는 이변을 남기고 비록 감독상에 머물렀지만, 많은 사람들이 황금종려상을 점치고 있었던 만큼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더했다. 이후에 사람들이 알마도바르 영화를 둘로 나눈다면 아마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전 영화와 이후 영화로 나눌 만큼 이 영화는 알마도바르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전환점이었다.

'키카'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 '욕망의 낮과 밤'으로 대변되었던 소위 "악동" 기질의 알마도바르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거쳐 이제 '그녀와 이야기하라(Hable con ella)'라는 그의 새 영화를 통해 더욱 성숙된 자세로 여성을 바로보는 진지한 시각을 보여준다. 어쩌면 영화의 주제로 사용된 "코마"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전작보다 여자를, 아니 인생을 바라보는 무게가 더 실렸다.

'그녀와 이야기하라'는 코마 상태의 두 여자를 중심으로 그녀들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베니뇨는 남자 간호사로 어머니의 죽음 이후, 병원에서 코마 상태의 한 여자만을 간호해왔다. 그의 인생을 뒤돌아 볼 때, 줄곧 여자만을 간호해온 베니뇨로서는 여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베니뇨가 간호하는 여자 알리시아는 교통사고로 지금은 코마 상태지만 한때는 베니뇨가 짝사랑했던 촉망받던 무용수였다.

베니뇨가 찾아갔던 피나 보쉬(Pina Bausch)의 무용, 카페 뮬러(Cafe Muller)에서 마르코와 서로 옆자리에 우연히 앉게 된다. 무용에 감동한 마르코의 눈물에 베니뇨는 강한 인상을 받지만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한다. 몇 달 뒤, 마르코의 여자친구 투우사 리디아가 사고로 베니뇨가 일하는 병원으로 실려오고 이들 둘의 기이한 재회는 "사랑하는 사람이 코마 상태"라는 공통점 때문에 우정으로 발전한다.

마르코는 코마 상태의 리디아와의 소통 방법을 모르는 반면, 베니뇨는 알리시아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보살피고, 간호하며 언젠가는 그녀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와 이야기하라'에서는 베니뇨의 눈에 비쳐진 흑백 무성 영화 '연인(알마도바르가 이 영화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을 통해 다시 한 번 감독의 비정상적 관능미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손가락만한 크기로 작아진 남자와 그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이 "액자 영화"는 둘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해져 결국 남자가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여자를 만족시킨다는 기이한 내용이다. 이는 영화의 기원인 흑백 영화로 표현된 여성 속(또는 기원)으로의 회귀가, 이후에 베니뇨와 알리시아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녀와 이야기하라'는 올해 칸 영화제에 충분히 출품할 수 있었는데도, 감독 알모도바르가 원치 않아 지난 4월 파리 영화 페스티발 개막작으로만 소개되었었다.

박정열 jungyeul.park@linguist.jussieu.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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