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김정은, 핵·경제실익 다 챙기려 승산 없는 도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중앙일보와 CSIS 연례포럼 제2세션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희 본지 대기자, 리처드 루거 전 미 상원 외교위원장,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 [김형수 기자]

‘김정은의 북한,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한 제1세션에서 마이클 그린 CSIS 아시아 담당 선임 부소장은 북한과의 대화에 회의론을 폈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는 유용성이 많이 떨어졌다.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북한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은 한국과 미국의 핑계에 불과하다. 대화를 악용해 북한이 계속 핵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위장막을 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화의 대가는 크다”고 주장했다. “대화가 잠시 도발을 자제시킬 순 있겠지만 (역대) 북한 정권의 행태를 분석해보니 대화 뒤에 곧 도발을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다. 그는 “김정은이 오랜 게임을 끝내려 한다. 그 끝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핵 보유를 인정한다고 오해할 만한 메시지를 북한에 주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북한의 체제를 통치자가 신(神)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정(神政)체제라는 분석엔 일치했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변화를 가져올 해법을 놓고는 견해가 엇갈렸다. 다음은 토론자들의 발언 요지.

체제 보장 받고 더 많은 것 요구할 수도

 ▶마이클 그린=김정은 정권도 나름의 합리적인 논리를 갖고 도발하고 있다. 과거엔 핵 능력을 갖추기 위해 투자를 했다면 이제는 그 수익을 회수하려 한다. 김정은의 ‘마지막 게임(End game)’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도박이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아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정은은 국내 권력기반 강화에 부담도 느끼지만 지금 도박을 즐기고 있다. 다만 정권의 큰 기반은 여전히 신정체제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체제는 언제든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국제사회가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고 제재하지 않도록 해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핵 위협은 북한이 세계와 교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도자가 누구든 상관없다. 김정은 정권에 와서 내용보다 속도가 달라졌다. 최근 3, 4월에 집중적으로 위협적인 수사를 쏟아냈다. 이제는 핵무기 개발과 함께 경제적 실익까지 모두 추구하겠다는 것이 이전의 메시지와 다른 점이다. 김정은 정권은 다시 협상할 생각이 없다. (핵 보유와 경제건설) 둘 다 하겠다는 것은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새로운 도박은 승산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를 구석에 몰아넣어 빠져나올 구멍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의 전략적 인내는 한계가 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북한이 진심을 보일 때 대화를 재개한다는 건데, 현재 북한은 전혀 아쉬운 것이 없다. 더구나 신정체제인 북한은 경제 개혁이 체제의 연속성에 위협을 주면 언제든 버릴 것이다. 세속적으로 개혁을 택한 미얀마와 다른 부분이다. 4, 5년 안에 북한 정권이 끝날 수도 있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 대화의 조건 싸움 중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북한은 협박 외에 쓸 수 있는 수단이 고갈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협박 수위를 높였지만 예전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 김정은 정권이 협상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 이들은 러브콜할 때도 협박 방식을 쓴다. 그래도 결국 원하는 건 협상이다. 구걸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협상 입지를 높이려고 도발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화의 조건이 맞느냐다. 지금은 대화 조건의 싸움이다. 그 조건이 안 맞아 대화가 안 되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나라가 미국뿐이라는 판단 때문에 미국과 대화하길 더 원한다. 그러나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협상도 안 하겠다는 입장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김정은 정권의 도발은 사실상 마지막 도박판이다. 과거 반복된 패턴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김정은은 마지막 패까지 다 받았고 이 도박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벼랑 끝 전술을 극대화하고 있다. 협상 조건이 완전히 충족되지 않으면 협상에 나가지 않으려 한다. 이 시점에 전략적 인내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위기만 더욱 고조시킬 것이다. 기다릴수록 시간은 북한 편에 있다. 이스라엘처럼 일상화된 전쟁 위기를 버틸 수 있는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북한이 신정체제여서 이럴 수밖에 없다는 소극적 태도로는 대가가 클 수 있다. 전략적 인내 대신 전략적 관리로 가야 한다.

특별취재팀=장세정·이지은·정원엽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