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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결혼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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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2년 전 미국 뉴욕을 방문한 길에 동성애자들의 연례 시가행진, 일명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구경한 적이 있다. 주워들은 풍월을 옮기자면, 미국의 이름난 퍼레이드는 각양각색의 의상과 온갖 아이디어로 꾸며진 차량의 행렬이 꽤 볼 만하다. 매년 1월 1일 LA 부근 패서디나에서 벌어지는 로즈 볼 퍼레이드, 11월 추수감사절 뉴욕에서 메이시스 백화점이 주관하는 퍼레이드는 미국 전역에 TV로 중계될 정도다. 직접 구경하려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뉴욕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도 구경꾼들이 빼곡했다. 다만 여느 퍼레이드보다 크게 고무된 분위기가 뚜렷했다. 이 무렵 뉴욕주에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법률이 막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를 주도한 주지사의 이름을 크게 연호하는 소리도 들렸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합법적인 결혼이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누군가 나눠준 인쇄물에서 흥미로운 글이 눈에 띄었다.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럼에도 동성애자이자 인권운동가인 그는 결혼할 권리를 위해 수십 년간 싸워왔다고 했다. 흔히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결혼할 권리를 보장받은 상태라야 할 수 있는 말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역은 이후에도 계속 늘어 현재 10여 곳에 이른다. 아예 연방법의 관련 규정을 고치려는 움직임도 있다. 세계적으로는 최근 관련 법안이 통과된 프랑스를 비롯해 10여 개 나라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한다. 결혼 대신 ‘시민결합’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커플과 비슷한 수준의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들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이슈가 부각되면 나올 법한 반응은 크게 네 가지다. ① 권리 인정하고 법적·제도적으로 보장 ② 법적·제도적 보장은 어렵지만 권리를 존중 ③ 성적 소수자의 존재를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 관용해서는 안 돼 ④ 가족 및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해악으로 절대 용인해서는 안 돼. 이는 지난해 19대 국회 출범 직후 중앙일보가 의원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 포함됐던 항목이다.

 영화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인 김조광수씨가 어제 동성 연인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올가을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몇 해 전 커밍아웃, 즉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이래 지지나 격려와 동시에 인신공격도 수시로 받아왔다. 당당히 결혼 계획을 알리는 회견장에는 ‘다양한 결혼식,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문구가 걸렸다. 이들의 결혼식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혹시라도 당사자들이 겪을지 모를 수난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이들의 결혼 소식에 일단 큰 축하를 보낸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문을 열어젖혔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