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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2호 27면

곽휘원(郭暉遠)이란 벼슬아치가 있었다. 타향 근무가 길었다. 고향의 아내에게 편지를 부친다는 것이 실수로 백지를 보냈다. 무소식도 희소식도 아닌 무자(無字) 편지에 아내는 시로 답했다. “푸른 휘장 창 아래서 편지를 뜯어보니(碧紗窓下啓緘封) 편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텅 비었더이다(尺紙終頭徹尾空). 아하! 당신은 이별의 한 품으시고(應是仙郞懷別恨) 저에 대한 생각 무언 속에 담으셨군요(憶人全在不言中).”

咬文嚼字<교문작자>

청(淸)나라 원매(袁枚1716~1797)가 지은 『수원시화(隨園詩畵)』의 한 대목이다. 기껏 쓴 편지 대신 백지를 부친 남편, 꿈보다 해몽의 부인, 중언부언 없이 답시만 깔끔하게 소개한 원매까지 멋쟁이 트리오다. 같은 책엔 이런 일화도 나온다.

왕서장(王西莊)이 지인의 문집에 서문을 썼다. “시인이 꼭 음시(吟詩)에 능할 필요는 없다. 흉금이 초탈하고 온아하다면 일자무식도 참시인이다. 마음이 옹졸하고 속(俗)된 자라면 온종일 교문작자(咬文嚼字)하고 연편누독(連篇累牘·쓸데없이 문장이 길고 복잡함)하더라도 시인이 아니다.”

여기 나오는 ‘교문작자’의 뜻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문장과 글자를 되씹음이다. 글을 가다듬는 꼼꼼함을 말한다. 둘째, 일부러 어려운 문자만 골라 쓰거나, 수식어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쓴다는 의미다.

중국의 ‘교문작자(咬文嚼字)’는 권위 있는 말글 전문잡지다. 한 해 동안 빈번하게 잘못 쓴 표현을 발표해 글쟁이들에게 필독서로 통한다. 주 초에 ‘교문작자’ 편집부가 마오둔(茅盾) 문학상의 역대 수상작품들을 ‘씹겠다(咬嚼)’고 선언했다. 하오밍젠(郝銘鑒) 총편집은 “현대 문학의 고전이라면 문학적 가치, 언어·문장뿐만 아니라 편집·교열도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범케이스도 내놓았다. 2008년 수상작 『암산(暗算)』의 ‘101개 주판알’이 딱 걸렸다. 중국의 주판은 보통 한 줄에 7개나 6개다. 101알 주판은 세상에 없다. 소설 『어얼구나강의 오른편 기슭(額爾古納河右岸)』에서는 ‘북두칠성이 달 주위를 돈다’는 천문에 어긋나는 표현이 잡혔다.

한국의 출판·문학계는 어떤가. 『교문작자』 같은 시어머니는 언감생심이다. 사재기로 돈벌이 궁리만 열심이다. 문화 융성은 노래 한두 곡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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