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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작가재판」"반소이민단체관련"20대 네 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재판이 시작되기 수 시간전.
퇴색한 3층 재판장 앞엔 약 50여명의 피고인가족, 친구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법정문 앞에선 공산청년연맹에서 나온 푸른 제복의 군인들이 「패스」가 없는 사람의 입장을 제지하고있었다.
『이게 공개재판이라면 입장도 자유로이 시켜야될 게 아니요?』한 청년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방청하러왔던 61세의「그리고렝코」예비역소장 (그는 「흐루시초프」와 다투고 나서 쫓겨났다)은 자기의 사진을 계속 찍어대는 경찰에게 벌컥 화를 냈다. 『나를 협박하지 마시오. 나는 이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단 말이요!』
「크레믈린」은 지난주 「러시아」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협박하는「켐페인」을 벌였다.
이날 「코론쵸프스카」가에 있는 재판장엔 4명의「인텔리」가 불려나왔다. 「알렉세이·도브로볼스키」(29)「유리·갈란스코프」(29)「알렉산드르·긴츠부르크」(30) 그리고 「베라· 라슈코바」(22)등이 바로 그들이다.
소련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재판을 받지 않고 9개월 이상의 구류는 받지 않게 돼있으나 이들은 모두 이미 1년씩을 감옥에서 지냈다.
이들은 NTS로 알려진 반소이민단체와 관련, 그 단체로부터 돈과 장비를 받고 반소 「팜플렛」을 배부한 혐의를 받고있었던 것이다.
제본업자인 「도브로볼스키」는 법정에서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다른 사람도 모두 관련됐다고말하고 「갈란스코프」가 지난 66년 「하인리히」라는 NTS요원과 만날때 같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증언에 나선 「니콜라스·소콜로프」(20)라는 「베네수엘라」인은 자기는 NTS의 명령에 따라 4명의 피고인을 위해 3만3천 「달러」와 복사기1대를 소련으로 들여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나머지 세피고인의 얘기는 달랐다.
「드라머」를 공부하던 여학생 「라슈코바」는 자기가 「긴츠부르크」와 「갈란스코프」를 위해 원고를 복사해 주긴 했으나 자기의 행동에 반소적인 죄명이 붙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아마추어」시인인 「갈란스코프」는 자기가 NTS요원과접촉했다는 「도브로볼스키」 의 주장을전적으로 부인했다.
젊은 작가인 「긴츠부르크」도작가「시냐프스키」와 「유리·다니엘」의 재판기록을 서방측에 보낸 자기의 행동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즉각 이 피고인들을 동정하는 운동이 퍼져갔다.
예비역 장군 「그리고렝코」를 포함한 다른 「그룹」은 피고인들을 위해 증언에 나설 것을 허용해주도록 청원했다.
게다가 고소련외상 「맥심·리트비노프」의 손자「파벨·리트비노프」와 투옥된 「유리· 다니엘」의 아내 「라리사·다니엘」등이『세계여론에 호소할 것』을 발표하고 『재판분위기도 공정치 못했을 뿐더러 처음부터 형량을 결정해 버린 듯한 이런 재판은 소련의 일대오점』이라고 신랄히 비판, 외부의 여론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5일간의 증언이 끝나자 막상 이들 전원에겐 모두유죄판결이 내려졌다. 「갈란스코프」에겐 7년, 「긴츠부르크」5년, 「도브로볼스키」2년, 그리고 「라슈코프」에겐 1년의 징역형이 각각 떨어진 것이다.
재판이 끝나자 밖에있던 군중들은 피고들을 위해 변호했던 변호사들에게 말없이 붉은「카네이션」다발을 안겨 주었다.

<유스위크· l윌22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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