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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 매니어 치과의사 민봉기씨

중앙일보

입력

프라모델 매니어이자 치과의사인 민봉기씨와 아들 경준군은 5년째 함께 프라모델을 만들며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시대가 흐르며 다양하게 분화된 취미 역시 그렇다. 그중 수십, 수백 개의 작은 부품들을 조립해 하나의 완성체를 만드는 ‘프라모델’은 더욱 특별하다. 30~40대 아버지들이 어릴 적 즐겼던 프라모델은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국내 프라모델 매니어 중 ‘고수’로 손꼽히는 치과의사 민봉기(38)씨를 만났다.

병원 벽면을 가득 메운 유리 진열장 안은 수십개의 프라모델로 가득하다. 제각기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질감도 천차만별이다.

진열장의 주인은 치과의사 민봉기씨다. 그는 수원시 인계동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프라모델 매니어다. 의사가 본업인 민씨의 병원 내 원장실에는 그가 만든 프라모델이 잔뜩 진열돼 있다. 작은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단순히 조립만 한다고해서 끝이 아니에요. 외부 틀도 만들고 색도입히며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진열장에 직접 설치한 LED 조명을 작동하자 수십 개의 프라모델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민씨가 처음 프라모델에 빠지게 된 것은 강원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는 ‘치과의사가 손이 한가해서야 되겠느냐’라는 생각에 취미 삼아 프라모델 만들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프라모델을 조립하던 향수를 떠올리며 착수했지만 결코 만만한 세계가 아니었다. 플라스틱(plastic)과 모델(model)을 합친 말인 프라모델은 정교한 부품의 집합체다. 몇 ㎜ 크기의 부품들을 직접 끼워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단순히 팔·다리, 몸통, 머리를 이어 붙이는 작업이 아닌 창조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여러 차례 만들다보니 점차 노하우가 생겼고 이후에는 실제 로봇과 같은 금속 질감을 살리기 위한 도색 솜씨도 능숙해졌다.

많은 사람과 취미를 공유하고 싶어진 민씨는 2005년 ‘민봉기의 건프라월드(cafe.daum.net/gunplaworld)’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같은 해에는 프라모델 국제 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현재 카페는 5만명의 프라모델 매니어가 작품을 올리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넓어졌다.

무엇보다 그는 아들과 함께 프라모델을 만들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주말이면 아들과 같이 각종 부품들을 모아 놓고 프라모델 만들기에 푹 빠진다.

동작 표현, 배경 틀 고민하며 아들과 친구처럼 놀아

아들 경준(11)군은 아버지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프라모델 제작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만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덕분이다. 아직 도색과 같은 어려운 작업은 할 수 없지만 아버지 옆에 꼭 붙어서 함께 조립을 한다. 경준군은 “가끔 아버지가 만든 프라모델을 망가뜨려 혼나기도 한다”며 “함께 작품을 만들고 완성시켰을 때의 뿌듯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웃었다.

민씨 부자가 프라모델을 즐기는 요령은 간단하다. 아빠와 아이가 각자 만들되 창의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것이다. 동네 문구점에서 구입한 프라모델 부품들을 완성만 시킨다면 의미가 없다. 개체의 동작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야 하고 주변 배경이 될 틀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프라모델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은 스케치북에 어떻게 색을 채워 넣느냐와 같은 이치다.

민씨는 아들에게 프라모델을 가르치려 하지않는다. 아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될 필요가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함께 질펀하게 놀아준다고 생각하면 더욱 즐겁게 즐길 수 있습니다. 같이 프라모델을 만드는 동안 경준이와 저는 친구죠.”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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