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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자초한 타율…학사 등록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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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이 못미더워 문교부는 학사등록증 발부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좀 이상한 제도다. 그러나 덮어놓고 문교부의 이안을 반대할 수도 없다. 대학에 물어보면 문교부가 누르는 통에 못살겠다고 하며, 문교부에 물으면 대학이 속이는 통에 못살겠다고 한다. 문교부가 여러 가지로 쓸데없이 대학들을 통제하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대학들 중에는 엄청나게 속이고 있는 대학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하여 통제와 불신은 일종의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점점 심해져가는 느낌이 있다. 지금의 이런사태는 문교부와 대학이 서로가 자초한 셈이다. 모든 면에서 자율의 능력이 아쉽다. 자율의 능력이 부족할 때 우리는 타율을 자초하며 자율에의 관용이 없을 때 우리는 불신을 자초한다. 나는 통제가 필요없다는 주장은 하지않겠다. 도리어 민주주의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합의된 통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할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율적인 생활의 범위가 넓은데에 사람의 사람다운 생활의 본뜻이 있다고도 주장하고 싶다. 자율의 성숙은 개인의 경우 그의 나이에 따른 성장과정에도 쉽게 비유할 수있다. 개인의 경우 자라난다는 것은 그근본적인 뜻을 자율의 성장에서 찾을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경우에도 우리는 이제 유년 소년기를 지나 보다 성숙한 보다 성장된 모습으로 이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등의 여러활동을 저개할때가 아닌가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언제까지나 권력은 못된 아비처럼 누르고, 비권력은 못된 아들처럼 생떼를 쓰고 하는 악순환을 거듭할 수는 없다. 자율이 없으면 타율이 온다. 자율은 다시 자율의 기회를 관용함에서 성장할 수있다. 주어진 자율의 기회를 악용한다면 다시 타율은 남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정직한 대학마저 자율하에 강제편입되고 만다. 타율의 능력과 관용에 희망을 걸어본다. <서울대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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