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에도 기회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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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성공적인 컴백 무대를 보는 건 즐거웠다. 한국에 산 지 오래됐지만 악기를 연주하고 곡도 쓰고 진심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건 많이 보지 못했다. 아이돌 그룹이나 잘 훈련된 발라드 가수들이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외에 주류 음악계에서 소비되는 음악이 거의 없다시피한 건 비극 아닐까?

나이 든 전설적 가수가 컴백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그간 자신들이 놓치고 있었던 게 뭔지 알았다는 건 슬프지 않은가. 내가 알기론 한국의 음악산업이 항상 이렇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신중현은 전성기엔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신중현은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을 필
요도 없었고(생각하니 무섭긴 하다), 특별한 춤을 출 필요도 없고 새로 나온 식기세척기 앞에 서서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훌륭한 곡을 만들었을 뿐이다.
 
내한 공연하는 대다수의 외국 공연밴드가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는건 아이러니다. 지난여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에 갔을 때 최다 관중을 끌어모은 밴드는 라디오헤드였다. 라디오헤드는 의도적으로 복잡한 음악을 즐겨 만들어왔고 광고 출연을 거부해 왔으며 대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해왔다. 만약 라디오헤드가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유명해지는 게 용납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세계적인 밴드이고 한국에서의 인기도 어마어마하다. 더 흥미롭고 창의적인 국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한국 대중은 그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줄 게 분명하다. 황금기의 신중현에게 그러했듯이. 그렇다면 왜 언론에선 그런 음악을 다루지 않는 걸까?
 
그런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수년간 영국 친구들이 날 보러 한국에 왔다. 음악 좀 안다고 잘난 척하는 친구들이 아니다 (난 좀 그런 편이지만). 하지만 그들은 다들 한국 음악에 대해 실망을 표했다. 내가 소위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음악을 들려주기 전까지는. 그 음악을 듣고 친구들은 자기들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지산 페스티벌에서 최고였던 공연은 라디오헤드도, 나의 오랜 영웅인 스톤 로지스도 아니었다. 한국의 전자음악 인디밴드인 이디오테잎이었다. 이디오테잎은 최근 조용필 새 앨범 쇼케이스에서 조용필 곡을 리믹스해 주목을 받았다.
 
강렬한 비트에다 ‘전자 장치에서 나오는 잡음’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이디오 테잎의 전형적 스타일이다. 그런데 지산 페스티벌에서 그들의 공연은 내가 본 라이브 공연 가운데 최고 중 하나였다. 처음엔 관객 규모가 작았지만 벌떼처럼 늘어났고, 수천명의 관객이 열광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나는 공연이었다.
 
싸이가 세계적 성공을 거둔 후, 한국 언론에서 모 걸그룹과 모 보이밴드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하는 기사를 너무 많이 읽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이젠 그 가능성은 포기하고 대신 이디오테잎 같은 밴드를 보낼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인디 음악에 기회를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이건 다른 얘기지만 안철수가 국회에 입성한 모습도 흥미롭다. 민주당 대표가 누구로 뽑히든지 간에 잠재적 신당 창당자인 ‘의원’ 안철수는 소위 ‘진보적’인 민주당에 좋은 소식일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을 망친 데 이어 12월 대선에선 선출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 될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이제 민주당은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접전의 상대가 절대 될 수 없을 거다. 지금이 새 진보 성향 정당이 출현할 적기라는 건 명백하다. 안의원이 그 정당을 이끌 적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당을 만들 적임자이긴 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진보의 미래의 열쇠는 서울시청 속 이상한 디자인의 책장 옆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에게 달렸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학사)·맨체스터대(MBA) 졸업 후 2010년부터 서울에서 일하며 『코리아: 불가능한 나라』를 썼다. 한국어판 6월 출간 예정.

다니엘 튜더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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